처음부터 사회공헌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브랜딩이나 마케팅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우리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사회공헌 사업의 브랜딩은 무엇보다 사회문제해결에 대한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진정성은 비유하자면 ‘길이, 넓이, 높이’ 세 가지 척도로 파악할 수 있다.
길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하는가?’ 넓이는 ‘얼마나 문제에 폭넓게 접근하고 있는가?’ 높이는 ‘문제해결 방식이 얼마나 고도화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진정성을 가진 사회공헌은 굳이 브랜딩 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본다. 진정성의 세 가지 척도 중 오랫동안 사회공헌 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그나마 쉬운 접근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기업의 진심이 충분히 전해지려면 사회공헌 사업의 넓이와 높이를 채워야 한다.
우리 재단은 ‘사각지대’ 아동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지면서 사업을 확장해 왔다. 지난 글에서는 학대나 방임으로 인해 보호가 필요한 미등록 이주아동을 지원한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파트너십 기관의 대표님께 ‘또 다른 사각지대’는 없는지 여쭈어 보았다. 대표님은 주저하지 않고 ‘경계선 지능 아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학대피해아동 중 상당수가 경계선 지능 아동인데 이들을 위한 지원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경계선 지능 아동이란 지능지수가 71~84 사이로 지적장애와 정상인의 경계선으로 분류되는 아동으로 한 학급에 2~3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이들을 호명하는 단어가 없었고,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학습능력이 부족하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로 치부되었다. 학대나 방임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시기에 맞는 적절한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해 후천적으로 경계선 지능이 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아동그룹홈에 입소하는 아이들의 70%가 경계선 지능 아동이라고 한다.
재단에서는 경계선 지능 아동을 위한 그룹홈을 지원하고 이들의 치료와 회복을 도울 수 있는 사업을 추진했다. 사각지대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줄줄이 엮여 나오기 시작했다. 사각지대 아이들의 자립을 위한 결연후원과 멘토링 사업까지 이어졌다. 문제해결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주제를 중심으로 사회공헌 사업의 넓이가 확장된 것이다.
사업의 높이는 효과성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성장한다. 사각지대 아이들을 돕는 사업을 6년 이상 진행하면서 우리는 질문이 생겼다. ‘우리가 정말 문제해결에 기여하고 있는 걸까?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고 있는 걸까?’ 그래서 사업의 사회적 임팩트를 측정해 보기로 했다. 전문 기관과 함께 재단이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로직을 정리하고 사업을 통한 변화를 파악하며 이를 화폐가치화했다. 아이들의 변화에 대한 질적인 조사도 함께 진행되었다.
다행히 연구 결과를 통해 우리 사업의 정량적, 정성적 성과가 유의미하게 도출되었다. 동시에 우리 사업의 한계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었고 사회적 임팩트를 키우기 위한 인사이트도 얻었다. 문제해결에 기여하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상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정성의 높이를 채우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언제부터인가 재단 사업에 대해 알고 있다는 분들을 만난다. 감사하게도 파트너 기관들이 우리 대신 재단을 소개하고 홍보해 준 것이다. 재단의 진정성에 공감하셨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파트너 기관의 추천으로 정부의 아동복지 유공자 상도 받았다. 나는 브랜딩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진정성의 길이와 넓이, 높이가 채워질수록 ‘우리가 누구인지’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세상을 위한 선한 영향력을 만드는 사회공헌은 진정성이 생명과 다름없다. 사회공헌 담당자의 사회문제해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찐’이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커버이미지 출처: Unsplash의 Brett Jord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