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일하길 참 잘했다!’ 생각했던 순간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을 위한 쉼터를 개소했을 때였다. 우리 재단은 국가나 민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각지대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내가 입사하던 해 어린이날 즈음이었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인권 문제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온 것을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이란 이주노동자, 난민 등 이주민들의 자녀로서 국내에 살고 있지만 출생등록이 되지 않아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을 말한다. 한마디로 있지만 없는 아이들. 서류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 의료, 복지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 그야말로 사각지대였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2만 명 정도 규모로 추산한다. 우리는 미등록 아동 중에서도 학대와 방임 상태에 놓여 있는 아이들에게 주목했다. 불법체류로 추방당하는 것이 두려워 학대 신고 자체가 드물고 학대피해를 당해도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 해결 과제를 추진하다 보면 종종 ‘우리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든다. 문제 자체의 원인이 워낙 복잡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어서 해법의 실타래를 풀기가 어렵다.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만 하더라도 출입국관리법, 출생등록법, 교육과 의료, 아동복지 관련 법적 제도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이주민 지원 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이 발을 들이기에 민감한 이슈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현장을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지원하는 기관들을 인터넷으로 조사하고 전화 인터뷰를 했다. 사업 현황을 듣고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향에 대한 인사이트를 가진 기관들은 직접 만나서 사업방향과 협력모델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영향력과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파트너를 선정했고 함께 사업을 추진했다. 글로 쓰니 간단하게 느껴지지만 수개월에 걸쳐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거리며 걸었다.
이 과정을 통해 안산 지역의 민간단체와 학대피해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한 쉼터를 개소했다. 한국에서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경기도 안산에 얼마나 많이 다녀왔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아동 그룹홈’이라는 복지시설이 있다.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가해부모와 같이 살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부모와 분리되어 살아가는 생활시설이다. 5명~7명 정도 아이들이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받는 곳이다. 하지만 이주아동들은 그룹홈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룹홈과 같은 시설을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지원하고자 했다.
기업의 사회공헌으로 복잡한 사회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국가와 민간에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사각지대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제해결의 범위를 좁혀 보면 기업이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이주아동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세팅하고 초기 운영비용을 지원했다. 시설 운영은 지역의 전문성을 가진 단체가 담당하고 공공기관에서는 이주아동의 학대피해 사례를 연결해 주었다. 안산에서만은 학대피해를 입은 이주아동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업이 사회문제에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의지를 보여주면, 이렇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솔루션을 만들 수 있다. 나 역시 사회문제해결은 국가나 NGO와 같은 민간단체의 역할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사회문제해결에 얼마나 진심인지가 관건이다. 기업 사회공헌 조직도 얼마든지 사회문제해결의 주체로서 해결사로서 역할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일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커버이미지 출처: Unsplash의 Hans-Peter Gau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