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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Oct 03. 2018

인생, 끝나지 않는 실험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과감한 제목이다. 여느 학자나 철학자가 이런 제목의 책을 냈다면 팔릴 지 의문이다. 하지만 유시민이기에 흥미가 간다. 그는 이제 ‘작가’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럽다. 두터운 지식과 날렵한 말솜씨로 정치판의 싸움닭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 더 익숙하다. 지적이며 유쾌하다. 그를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본다. 그의 인생 철학이 궁금했다.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책에는 한국의 현대사를 통과하며 희노애락을 겪었던 오십대 남성의 인생론이 담겨 있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것은 아니지만(...)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그의 답은 간결하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하지만 전제가 있다. 무엇보다 자기방식대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내가 바라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인용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평생 공부하는 사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돈을 버는 데 골몰하는 사람 (중략)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삶이 있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가늠하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어떤 삶이든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자유의지로 만들어낸 삶이 아니면 훌륭할 수 없다.


자기방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당연하게 들린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 아닌가? 하지만 삶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선택하는 삶인 것 같지만 때로는 주어진 환경이 내 삶을 선택하거나 강요하기도 한다. 


저자의 삶도 그러했던 것 같다. 현대사의 물줄기를 타고 흐르며 그는 ‘하고 싶은 일’ 보다 ‘해야 하는 일’ 을 했다. 독재 정권에 맞서 저항하고, 정치 개혁을 위해 정치권에 뛰어들었던 것은 ‘소명과 명분’은 있었지만 그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옳은 일이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나다운 일인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가 아쉬워하는 지점이다.



어떤. 인생이. 성공적.


그가 말하는 성공한 인생은 심플하다. 내가 즐거운, 나다운 일을 하는 삶이다.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이제는 온전히 ‘작가’ 로서의 삶을 사는 그는 절반은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그의 말에 공감한다. 동시에 현실 직장인인 나에겐 아직 먼 이야기 같다. 부럽다. 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즐거운데. 글쓰는 일로 밥벌이까지는 하지 못한다. 지금 하는 일도 의미있고 보람있지만 더 즐거운 일을 ‘직업’ 삼고 싶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글쓰는 것이 좋았지만 직업으로 고민한 것은 20대 중반에 잠시뿐이었다. 성공한 인생에 대한 정의는 삶을 경험하고 배우면서 조금씩 바뀐다. 10대에 꿈꾸는 삶과 30대에 꿈꾸는 삶은 다르다.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직접 부딪히면서 깨달아 가기 때문이다. 남이 가르쳐 준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성공에 대한 생각도 나이를 먹으며 달라졌다.



나의 장래희망 히스토리


10대 시절 학교에 장래희망을 써서 제출하곤 했다. 내 장래희망은 1순위 경제학교수, 2순위 고위공무원이었다. 고위공무원은 엄마가 원했던 것 같고 경제학교수는 이유를 모르겠다. 경제학이 뭔지도 모르고 주변에 교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그래, 10대의 꿈은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아이돌을 꿈꾸고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길 바란다. 10대에겐 멋있어 보이는 삶이 성공한 인생이다.


20대가 되면 좀 더 현실적이 된다. 머리 속이 복잡하다. 좋아하는 일, 재밌는 일, 안정적인 일, 돈 많이 주는 일 등등 고민의 연속이다. 그러다 결국 합격 문자를 보내주는 회사에서 일을 한다. 나는 이력서만 50군데 이상 냈고 그 중에 2군데 면접을 봐서 1곳에 합격 했다. 다양한 직군에 이력서를 내며 꼭 붙여 달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장래희망이 취업이다.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이미 성공한 인생 처럼 느껴졌다.


30대. 먹고 살만해져서 일까. 일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돈벌이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더 의미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났는가?’ 그냥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 땅에서 더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돈이 중요하지만, 돈을 위해 살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과 세상에 기여하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여겨졌다. 이타적 삶이야말로 성공하는 인생의 길이라 믿었다.


40대를 앞둔 지금은 유시민의 생각에 더 가깝다. 단순히 의미있는 일, 좋아하는 일 보다 ‘나다운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으며, 내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나의 정체성과 생각을 드러내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나 자신을 훼손하지 않는 일이면 좋겠다. 멋져 보이는 일, 재미있는 일, 의미있는 일... 모두 좋지만 결국 나 답게 살 수 있는 일을 할 때 더 행복할 것 같다.


최인철 교수는 <굿라이프>를 통해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경향이 강해진다고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면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 의미뿐 아니라 행복에도 중요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이 하는 일들이 ‘who am I?(나는 누구인가?)’와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어야 행복(즐거움)과 의미 모두를 강하게 경험한다. 자기정체성을 구축하고 그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 <굿 라이프> 최인철



인생, 끝나지 않는 실험실


저자도 나이를 먹은 지금에야, 인생의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나답게 사는 삶’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그가 아쉬워 하는 젊은 날들도 지금의 시선으로 볼 때 그러한 것뿐이다. 주어진 삶을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다운 일’이 아니어도 괜찮다. 인생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자의 제안을 이렇게 수정하고 싶다.


실험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성장하라


인생은 실험실이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탐구하는 실험실. 저자 역시 인생의 수많은 실험을 거친 후에야 ‘나답게 사는 인생’이 정답이라고 선언한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후에 비로소 삶의 진실을 맛본 것이다. 물론, 그 진실도 오롯이 그의 것일 뿐이다. 백 가지 인생에는 백 가지 답이 있다. 나 역시 나만의 실험들을 거치며 여기까지 왔다. 때론 실패하고 때론 성공하면서 삶을 배운다. 인생은 자기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외로운 실험실이다.


그러니 책을 읽고서 굳이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찾으려고 노력하지 마라. 그저 지금 옳다고 믿는 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 다만, 내가 믿었던 것들이 정말 맞는 지 확인해야 한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 지 고민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 그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의 진실을 배워가고 성장해 간다.


어떻게 살 것인가?

실험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성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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