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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ul 01. 2019

희망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자주 감기가 걸리고 오랫동안 낫지 않는다거나, 오랜 기간 무기력해 보이는 그런 가족, 동료가 있다면  한 번쯤은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요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몸이 오랫동안 아프다면 단순히 바이러스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거나,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환경의 문제를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그들은 왜 더 아파야 하는가?


인간은 진공상태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정치경제 제도 안에서, 사회문화적 배경 위에서,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는 사회역학 분야를 연구한다. 특별히 그는 한국사회 안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왜 더 아픈지’ 그 사회적 역학과 사회구조적 폭력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하여 약자와 소수자들의 질병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임을 고발한다.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역학 연구 사례들은 그 고발의 타당성을 논증함은 물론, 건강과 질병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킨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사례를 인용하면 이런 것이다.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경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다문화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경험과 우울증상의 연관성

루마니아 낙태금지법 제정이 모성 사망률에 미친 영향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 참여에 따른 결핵 사망률 변화

걸프전 참전 군인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 비교

실업률이 자살률로 이어지는 사회적 원인

동성결혼 불인정과 성소수자 건강의 관계


사회구조적 폭력과 질병 간의 상관관계를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보여준다.


사회구조적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


사실 이러한 연구결과보다 내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회구조적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생존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이 겪는 실존적인 아픔들은 단순히 트라우마에 대한 의료적인 접근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선박 운항에 대한 관리감독, 해양 구조 및 국가의 재난 관리 시스템, 직업윤리 등 사회 전반의 부패와 부실로 인해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개인이 겪게 되는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사회 공동체가 그 사건의 의미를 공동으로 해석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아직까지 진상규명조차 명확히 되지 못하고 있으니 그 피해자들의 상처와 아픔이 치유는커녕 덧나기만 하지 않을까 안타깝다. 여기까지가 한국 사회가 가진 사회적 감수성의 수준이며 실력인 것이다.


언론에서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상처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를 때, 저는 조심스럽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와 관련된 의학적 치료는 분명히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한국사회의 온갖 모순들이 집약된 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한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수준에서 진단하게 되고 그것이 개인적 수준의 치료‘만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 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더 연결될수록 더 건강하다


1979년에 발표된 리사 버크먼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 사망률이 1.8배~2.7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더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내가 힘들 때 이야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가 나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관계망의 양극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 가난할수록 가족 관계가 무너져 있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지만,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의사나 변호사는 없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회적 관계망에서 좋은 자원들은 특정 집단에 집중된다. 가난할수록 관계망의 자원도 부실해지고 그것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하 셋방에 살던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을 뿐 아니라 수입도 없는 상태였으나 국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도움을 청할 가족도, 이웃도 없었던 것 같다. 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갖추어져야 한다. 내가 아플 때, 힘들 때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환경이 제도적으로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 안에 마련될 필요가 있다.


건강한 공동체가 건강의 비결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세토Roseto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미국에 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인 공동체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진료하던 의사들은 신기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로세토에서는 유달리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다는 점이었습니다.


로세토 마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삶은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으며 꾸밈이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행동했다. 로세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공동체는 계층이 없는 소박한 사회였으며, 따뜻하고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가난은 없었다. 이웃들이 빈곤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으며 특히 이탈리아에서 이주해 오는 소수 이민자들에게 그러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픔이 길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들이 더 나은 사회로 향하는 길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내 한 몸 돌보기도 어려운 치열한 삶의 전쟁터 속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치유하고자 하는 사회적 감수성 또한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와 같이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도록, 고통받는 자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아파하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공감, 냉철한 이성에 기반한 사회 비판과 대안 제시. 책을 통해 멋진 사람을 만났다. 그를 통해 희망이 더 멀리, 더 깊이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 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서 도망가지 말고, 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를 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간직하세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 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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