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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ul 19. 2019

가장 연약하고 고독한 이름, 가해자가족

<아들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아베 교코


가해자 혹은 수용자가족 지원이라는 개념은 아동복지단체에서 일할 때 처음 알았다. 수용자와 그 가족들을 지원하는 기독교 선교단체를 통해서였다. 부모가 교도소에 수용된 결손가정 아이들을 위해 여름캠프, 크리스마스 선물 나누기 등의 사업을 진행했었고 우리 단체가 함께 지원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를 잃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이 범죄자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배제와 차별 속에 숨죽여 고통받고 있었다.



가해자가족이 겪는 고통은 ‘정의’로운가?


<아들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는 일본의 가해자가족 지원단체인 월드오픈하트의 이사장 아베 교코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가해자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사례 중심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가해자가족 지원의 사회적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가해자가족을 지원한다고 하면 당장 나오는 반응은 이런 것이다.

“피해자가족들은 더 큰 고통 속에 있는데 가해자가족 지원이 웬 말?”
“사정은 딱하지만 부모 탓을 해야지 어떡하겠어”

고통받는 피해자가족도 있는데 가해자가족 지원이 심정적으로 동의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죄의 대가를 가족들이 함께 치르는 것을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가해자가 자녀라면 가해자를 만든 부모에 대한 처벌이요, 가해자가 부모라면 자녀들의 연대책임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13조를 통해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는 연좌제를 옹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해자가족들이 고통을 당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은 무고한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뿐이다. 최근 언론에도 나왔지만 연예인 부모들의 빚 문제로 연예인 당사자가 지속적으로 고통당하는 경우들을 본다. 처음엔 자녀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또는 자신에 대한 비난이 두려워 부모를 돕지만 범죄는 반복되고 결국은 가족의 연을 끊기에 이른다. 가해자가족이 고통당한다고 해서 가해자 역시 책임을 통감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가족의 고통 속에 정의는 없다.



관계가 무너질 때, 삶이 무너진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원만한 관계들이 깨어지고 관계 속에서 배제되기 시작할 때, 인생의 위기가 찾아온다.


가해자가족들의 삶이 그렇다. 어느 날 가족이 사라지고, 이웃들이 비난하기 시작하며, 언론보도에는 악플들이 달린다. 더 이상 살던 집에서 살 수 없고, 다니던 학교와 직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온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린다. 가해자가족을 향한 사회적 배제와 차별은 그들의 삶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게다가 가해자가족은 (일본의 경우) 합의금, 변호사 비용 등 평균 6천만 원의 지출을 하게 되고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던 가족이 수용자가 될 경우 빈곤상황에 빠지게 된다. 돈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어지니 가족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가해자가족 지원이 필요한 이유


가해자가족 지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죄가 없는 가해자가족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고 또 다른 일탈을 막는 것이 하나이고, 가족이라는 안전망이 있어야 가해자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하고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이유이다. 가해자가족이나 피해자가족 모두, 누군가의 범죄로 인해 삶의 위기를 겪어야만 하는 피해자이다.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 양쪽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가족과의 관계는 사회와 관계를 설정하는 중요한 바탕이 되므로 가족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다시 쌓는 것이 수용자의 사회복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중요한 사람을 잃어버렸던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할 수 없다. 가족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느낄 때 가해자 자신도 처음으로 변하려고 한다. (중략) 차별이나 배제로부터 가해자가족을 지키고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끌어안아 주는 것 그것이 가해자가족지원의 종착점이다.


이 책을 번역한 이경림 대표님은 내가 근무하던 단체의 대표님으로 인연이 있다. 지금은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창립자이자 상임이사로서 사각지대에 있는 수용자자녀들과 그 가족을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한 비영리 영역으로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서 소기의 성과들을 만들어가시는 그 열정과 헌신을 늘 응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해자/수용자가족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가해가가족 지원에 대한 열린 마음이 이 책을 통해 널리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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