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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19. 2018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힘겨운 삶 속에서 발견하는 보통의 행복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새 직장에서 일 년의 시간을 보냈다.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터널의 한 구간을 지났다. 끝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종착지를 알 수 없기에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그 어둠 밖에 서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 말은 진실이었다. 지루했던 터널의 끝은 자연스레 다가왔다. 특단의 조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탈출 전략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긴 어둠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해결했다고 하기엔 무책임한 말 같다. 도대체 무엇이 변한 것일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적응의 과정에는 고통이 따르고 시간이 필요하다. 일 년의 시간동안 나 자신도 나를 둘러싼 환경도 조금씩 변했다. 조직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면서 서로가 성장했다. 리더의 성향과 업무 스타일을 파악하면서 함께 일하는 방법을 맞춰갈 수 있었다. 리더가 가진 고민과 어려움, 조직 안에서의 욕구를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 지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리더 스스로도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종종 팀원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고 느꼈다. 예전보다  상처도 빨리 아물었다.


적응했다는 것이 항상 좋은 의미는 아니다. 불만과 아픔에 적응했다는 의미 일 때도 있어서.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몸이 물의 흐름에 적응하며 수영을 하게 되듯 나의 몸과 마음이 조직 문화에 적응하며 일 자체도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통한 성취감과 즐거움이 부쩍 늘어났다. 드디어 내게도 이런 날이. 힘들지만 견디고 버티면서 한 걸음씩 내딛은 보람이 있다.



일상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어둠 속에서 돌아보지 못했던 삶의 영역들에 볕이 들었다. 나의 일상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바뀐 건 거의 없었다.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이나 조금 나아진 지금이나 내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똑같은 일상이 어제나 오늘이나 반복되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삶에는 행복한 순간들이 많이 있었는데,
내가 그 순간들을 지나쳐 버린 건 아니었을까?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내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일상 속에서 행복하거나 즐겁거나 기쁨을 느끼는 순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하루를 전지적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았다.


맞았다. 행복한 순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곰돌이 푸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행복할 순 없어도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내가 발견한 일상의 행복은 이런 것이다.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마시는 모닝 커피
회사 동료들과 나누는 일상의 편안한 대화
동료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거나 받았을 때
맛있는 간식을 먹을 때
점심 후 마시는 달달한 밀크티 한 잔
새로운 업무를 상상하고 기획할 때
맡은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퇴근길 지하철에서의 독서
퇴근 후 아들과 함께 노는 시간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리고 잠들기 전 아내와 나누는 대화
주말 저녁 아내와의 맥주 한 잔
주말 이른 아침 혼자만의 시간
좋은 날씨에 가족과의 주말 나들이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하는 시간


흥분되는 기쁨이나 즐거움은 아니지만, 충분히 즐겁고 의미있는 삶을 즐길 수 있는 순간들이다. 일상은 그렇게 행복의 가능성들도 채워져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소확행(小確幸)’ 이다. 소확행이란 주택 구입, 취업, 결혼 등 크지만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보다는, 일상의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을 말한다.(출처: 네이버 지식상식사전) 생각해보면 괴롭고 힘든 시간들 가운데서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순간들은 항상 존재했다.



행복을 찾지 못하는 이유


사람들은 ‘행복’ 을 특별한 감정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은 우리를 기분좋게 하는 다양한 감정 모두를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재밌는 게임을 할 때도, 숲 속에서 평화로운 산책을 할 때도 우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모두가 행복이다. 최인철 교수의 저서 <굿 라이프>에 따르면 심리학에서는 행복한 감정을 측정할 때 PANAS(positive and negative affect schedule) 라는 도구를 사용하는데, PANAS는 일정 기간 동안 한 개인이 경험한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의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다. 여기에 포함된 긍정 감정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관심 있는, 신나는, 강인한, 열정적인, 자랑스러운, 정신이 맑게 깨어 있는, 영감 받은, 단호한, 집중하는, 활기찬>

이렇게 다양한 행복을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은 어딘가 멀리에 있는 행복을 찾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 최인철 교수는 그 원인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많은 연구는 우리가 충분히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로 ‘단 하나의 옳은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직된 사고를 꼽는다. 예를 들어 가능한 행동의 선택지를 극소수로 제한해놓은 문화, 다시 말해 엄격한 행동 규범이 존재하는 문화의 구성원들이 느슨한 문화의 구성원들보다 낮은 행복감을 경험한다. 개인적 자유가 억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행복한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서 ‘행복’이라는 어떤 특수하고 개별적인 감정을 경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경직된 사고가 우리의 행복을 억압했을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만족하고 이미 감사하고 이미 고요하고 이미 즐거우면서도, 여전히 행복이라는 파랑새 같은 감정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숙제를 안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내 안의 부정적 감정들이 내 눈을 가려버리는 것이다. 일상에 놓여있는 행복을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이는 심리학에서 ‘부정 편향’ 이라는 말로 설명되기도 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기가 훨씬 더 쉽다. 두뇌의 부정 편향 탓이다. 두뇌에 관한 한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셈이다. (중략) 우리는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 나머지 현실도 왜곡된 방식으로 바라본다. 셸리 게이블과 조너선 하이트의 연구는 평소 우리가 부정적인 경험보다 긍정적인 경험을 3배나 더 많이 하는데도 부정적인 경험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 <해피니스 트랙> (에마 세팔라 저/이수경 역/한국경제신문)


일상 속에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 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삶의 경험들이 긍정적인 경험들까지도 가려버리고 있다. 내 마음에 들어온 분노나 우울의 감정이 행복한 일들을 압도해 버린다. 부정적인 경험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훈련이 된다면, 아마 우린 보다 풍성한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삶 속에 숨겨진 행복의 단서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위에 적었던 소확행의 순간들도 절반은 직장에서 일어난다. 사람 때문에 퇴사를 결심 하기도 하지만, 사람 때문에 직장이 좋아지기도 한다. 업무 스트레스로 괴로운 시간들도 있지만, 업무를 통해 성취감과 유능감을 느끼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직장생활도 부정적인 경험들과 긍정적인 경험들이 뒤섞여 있다. 어떤 경험들에 내 마음을 더 집중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물론, 부정적인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라면 그 직장은 떠나야하는 것이 맞다. 정신 승리에도 한계가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행복의 가능성이다. 비록 지금은 눈물범벅일지라도, 오늘 하루 버티기 힘겨운 삶일지라도 천천히 삶을 돌아보면 행복의 단서들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것이 ‘팩트’ 다.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에 더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은 나 역시 그동안 무시하고 지나갔던 사소하지만 즐거운 순간들을 복원시키려고 한다. 잃어버린 순간들을 다시 발견하고, 그 시간들이 가진 행복의 가치를 온전히 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쟁처럼 바쁘고 치열한 직장 생활 속에서 쉽지만은 않을 일이다. 하지만 내 삶이니까 더 행복하고 싶으니까 포기하고 싶지 않다. 특별한 행복이 아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보통의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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