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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오늘도 춤을 춘다
by 재희 Nov 29. 2018

결혼, 타인 속으로 깊숙이

결혼이 선사하는 인간관계의 신세계

아내와 900일이 되던 추운 겨울날 밤. 나는 한 달 전부터 준비한 프로포즈를 실행하기로 했다. 장소는 아내 집 근처 카페였고 카페 사장님을 섭외 했다. D-day. 홍대에서 데이트를 마치고 아내를 집에 바래다주며 굳이 카페에 가자고 했다. 차를 마시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카페를 나왔다. 곧 조명이 꺼지고 카페 벽면의 큰 화면에서 익숙한 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설픈 솜씨로 만든 프로포즈 영상이었다. 지난 추억을 담은 사진과 프로포즈 메시지를 담았다. 무척 오글거리는 내용이었지만 다행히 손님은 별로 없었다. 영상이 끝나고 아내에게 반지를 건냈다. 아내의 눈을 보았다. 감동을 받은 것인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은 실패’

다행히 아내는 프로포즈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두 달 쯤 뒤 상견례를 치렀다. 와. 이토록 숨 막히는 자리가 있을까.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상견례를 ‘끝냈다’는 사실 이다.

결혼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공유하는 일이다. 나의 인간관계를 배우자에게 모두 드러내야 한다. 부모님에게 인사를 가고 친척들, 친구들을 소개하며 회사, 교회, 동호회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는다. 상견례에서 맛보는 극한의 어색함부터, 청첩장을 돌리기 위해 낯선 배우자의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까지. 나와 너의 결혼인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끼어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동안 뿌려왔고 앞으로도 뿌려야 할 축의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관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인도에 떨어져 있지 않는 한 관계가 부재한 삶은 없다. 아니, 무인도에 떨어져도 그곳에 있는 나무 하나, 돌 하나에도 이름을 지어주고 관계를 맺는 것이 인간이다.


관계는 삶의 본질이다. 때문에 삶과 삶이 만나고 교차하는 결혼은 서로의 관계 안으로, 타인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사건이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작품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결혼은 여기에 ‘관계’를 더한다. 배우자의 과거, 현재, 미래의 관계가 함께 온다. 결혼은 진정 어마 무시한 일이다.

30년 동안 아무런 관계도 없던 완벽한 타인들이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낯선 할머니가 시어머니가 되고, PC방에서 볼법한 백수청년이 도련님으로 변신한다.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장인어른으로, 철없는 대학생이 처제가 된다. 나는 누군가의 사위가 되고 형부가 되고 이모부가 되고, 아내는 며느리도 되고 형수도 되고 숙모도 된다. 결혼은 이렇게 어색한 명찰을 덕지덕지 붙이는 일이다. 내 몸에 붙어 있는 명찰만큼 내가 해야하는 역할도 다양해진다. 결혼 전에는 '아들'로서만 살았다면, 결혼 후에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

결혼 이후의 삶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요구한다. 아내와 자녀가 있음에도 ‘아들’로만 살아가서는 안된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빠로서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감당하고, 역할들 간의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들-남편-아빠의 역할은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모순적이고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만약 아내가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 을 이야기한다고 하자. ‘아들’ 로서는 아내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지 모른다. 하지만 ‘남편’ 으로서는 아내의 감정과 불만의 이유에 대해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내가 자녀를 과도하게 혼내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남편’ 으로서 육아로 인해 지친 아내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빠’ 로서 자녀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아내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가족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조화롭게 역할을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관계와 역할을 잘 조율하고 운영하는 과정이 곧 결혼 후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다. 故 신영복 교수의 <담론>(돌베개) 에는 이러한 관계와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정체성이란 내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입니다. 정체성은 본질에 있어서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생성(being)입니다. 관계의 조직은 존재를 생성으로 탄생시키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새로운 정체성은 나이를 먹는 것처럼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삼십 년간 쌓여온 경험과 인식의 틀을 깨는 '자기변화'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행인 것은 결혼까지 이르게 한 서로에 대한 애정이 이 변화를 가능케 한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부부가 쌓여 있는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둘 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보살핌 속에 귀하게 자란 자녀들이다. 여전히 대우받으며 집에서 편히 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배우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고단함을 뒤로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지치고 힘들지만 배우자을 위해 먼저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이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집안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마저 절제하며 갓난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로서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뒤로 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빠’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가족에 대한, 관계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과 인내로부터 자기변화는 시작된다.

나를 위해 살던, 삶의 관성은 강력하다. 관성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강한 부부, 건강한 가족 관계도 절제와 인내를 요구한다.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지독한 회사 스트레스 속에서도, 하루 종일 육아에 지친 아내에게 '얼마나 힘들었냐고, 오늘도 고마웠다'고 먼저 말할 수 있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기에 때로는 누가 더 힘든지 따지려 하고, 때로는 짜증과 스트레스에 이성을 놓아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는 원래 그토록 약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완벽한 관계가 아니라 성숙한 관계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결심과 노력이 성숙한 부부 관계를 만든다.


결혼생활이 인내가 전부는 아니다. 아내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나의 융통성 없는 성격에 비해 아내는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췄다. 일상 속에서 내가 생각지 못한 문제해결 방식을 찾으면 항상 ‘지혜롭다’ 고 말해 주었다. 사귀는 동안 그런 일은 자주 있었고 그 때마다 아내의 ‘지혜로움’을 칭찬했다. 아내는 그런 칭찬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에게 지혜롭다고 한 사람은 자기가 처음이야”
“그래? 자기는 내가 도저히 생각 못하는 방법들을 찾아내는데... 다른 사람도 똑같이 느낄걸?”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되게 멋진 사람이 된 거 같아.”

아내는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 했다. 요리도 잘하고 만들기도 잘하고 포장도 잘하고 글씨도 잘 썼다. 하루는 아내에게 손재주가 정말 좋은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그런 말도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말 듣고 보니까 나 정말 손재주가 있는 것 같아!”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강점에 주목하고 격려하기 보다 약점을 비난하는 일이 많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살다보면 배우자의 좋은 점이나 뛰어난 능력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서로의 강점에 대해 칭찬하고 격려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부부관계 안에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피아노를 좋아했던 아내는 최근 일년 간 피아노 레슨을 받고 교회 반주자로 섬기고 있다. 역시 손재주가 좋다. 결혼할 때만 해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다. 난 그저 아내의 연주를 칭찬하고 격려해줄 뿐이었다.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성장하는 관계야말로 결혼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행복한 삶은 행복한 관계로부터 온다. 원만한 가족, 친구, 동료 관계가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만든다. 관점을 바꾸어 보면, 행복하고 즐거운 관계는 개개인의 노력이 만들어 간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이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행복한 관계의 바탕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관계를 꿈꾼다면 먼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내 마음이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지, 나와 연결된 사람들도 함께 바라보고 있는지. 나와 연결된 삶들이 더 나아지기 바라는 그 마음에서부터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가 유지되고 아름다워진다.


인간적 공감이 바탕에 깔리지 않는 한 관계는 건설되지 못합니다. (중략)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 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입니다. (중략) 결혼을 앞둔 여인이 친구로부터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I really conceived I could be a better person with him) 인간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곡을 찌르는 답변입니다. - <담론>(신영복 저/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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