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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03. 2018

영어유치원보다 중요한 것에 대해서

우리 아이 어떻게 키워야할까?

대한민국의 치열한 육아 현장


태한이는 어린이집을 조금 늦게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가 일을 안 하기도 했고 경제적으로도 아이가 집에 있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보낼까 말까 고민은 계속 했다. 태한이도 어린이집에 가면 집에서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것이고 아내도 잠시나마 숨돌릴 시간이 생기니까. 하지만 태한이가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 서두르지 않았다.

 

세 돌 즈음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어린이집도 함께 알아봤다. 신도시라 젊은 부부가 많다는 것은 예상했지만 단지 내 어린이집은 택도 없었다. 맞벌이도 다자녀도 아니고. 가까운 곳에는 갈 곳이 없다. 대한민국의 치열한 육아 현장에 본격 진입했음을 느꼈다.


결국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인근의 가정 어린이집을 택했다. 가정 어린이집은 말 그대로 일반 가정집을 활용해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다. 그래서 규모가 작았지만 태한이 같은 성격은 이런 곳이 더 편안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처음하는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담당 선생님도 좋은 분이셔서 아이도 어린이집을 좋아했다. 그런데 일 년 만에 어린이집을 옮겨야했다. 가정 어린이집은 만 3세까지만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적응해서 다니는 데 다시 옮겨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다섯 살.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기라고 한다. 이 때부터 부모의 양육 혹은 교육방침에 따라 진로가 바뀐다. 어린이집, 국공립 유치원, 사립 유치원, 영어 유치원, 놀이학교 등등 다양한 후보가 있다. 우리는 어린이집과 국공립 유치원을 후보에 올렸다. 잠깐이지만 영어유치원도 후보에 올랐다. 살아보니 영어는 기본으로 깔고 있으면 일단 편하다. 태한이가 커서 영어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긴 고민이었지만, 도저히 월급으로 감당할 비용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내 접었다.


사립 유치원도 비싼데 별다른 장점이 없다고 느꼈다. 작년 12월 국공립 유치원 입학원서를 내고 추첨을 기다렸다. 결과는 후보 200번대.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사실 유치원이 되어도 고민은 있었다. 1시 반에 수업이 끝나면 이후 시간은 어떡할 것인가? 방과 후 시간에 대한 대안이 없었다. 결국은 사교육으로 귀결되는 구조이다.


미안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여력이 된다면 영어유치원에 보냈을 것 같다. 하지만 영어유치원이 아이의 삶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이가 즐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아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늘 고민이 되고 흔들린다. 육아에 왕도(王道)가 있지는 않겠지만 가끔씩 떠오르는 이 질문 앞에서 난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태한이를 어떤 아이로 어떻게 키워야 할까?



경쟁하기 보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난 우석훈의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자고 제안한다.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의 논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 다른 방식의 삶을 선물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서 내가 공감했던 내용들을 같이 나누고 싶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나만 잘하면 된다', 소위 이해찬 세대의 교육방침이었다. 하나만 잘하게 하는 것은 매우 기능적인 선택이고, 경쟁이 극한으로 치닫는 시점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의 세계는 많은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결정하고, 그 사이의 과정들을 원활하게 조정하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사회일 것이다. 한 가지만 잘해서도 곤란하고, 자기 것만 고집해서도 곤란하다. 소통과 조율, 이런 것은 경쟁과 정반대에 있는 속성이다.”

“안 그래도 외동으로 혼자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는 고립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고민하는 게 우리가 고려할 육아의 제 1원칙 인지도 모른다. 남과 같이 지내는 데 익숙해지는 법,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조율하는 법, 보고 싶지 않을 때도 모질게 밀어내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법... 다섯 살, 여섯 살을 거치면서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다.”

“경쟁을 너무 강조하면, 자식이 하는 경쟁에 어느덧 부모도 같이 뛰어들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부모가 해주어야 할 것은 협업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 또 내 아이를 사랑하듯이 다른 아이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마음이 살 만한 사회를 만들고, 결국 내 아이에게 플러스로 돌아온다.”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우석훈 저/다산북스)


최근 뉴스에서 숙명여고 교무부장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쌍둥이 딸을 위해 시험문제를 유출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구속되고 쌍둥이는 학교에서 퇴학 조치되었다. 쌍둥이는 고등학교 입학 당시 59등, 121등이었는데 1학년 2학기부터 성적이 급상승하기 시작해 2학년 1학기에는 자매가 문과와 이과 전교 1등을 차지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시험 문제 유출 의혹이 일었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아버지의 그릇된 자식 사랑이 가져온 비극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제 실력으로 전교 1등을 할 수 없었던 자신들을 탓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된다. 어떻게든 1등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여전히 그들 마음에 남아 있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경쟁에서 승리만 생각하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 마음이 경쟁으로 인해 메말라 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 역시 우석훈의 말처럼 경쟁하는 삶이 아닌 함께 사는 삶을 알려주고 싶다.

물론 나의 삶도 내 뜻대로 안 되는데, 어떻게 자녀의 인생을 내 뜻대로 하겠는가. 고유한 마음과 생각을 가진 한 인격체를 내 의도대로만 움직인다는 것은 '폭력'이다. 내 뜻대로 하려고만 하면 아이는 괴롭고 부모는 지친다. 부모의 허망한 욕심이 자녀의 미래를 망친다. 부모가 아무리 좋은 뜻을 가졌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럼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육아는 어떤 모습일까.



지나치게 힘쓰지 않고, 과하게 돈 쓰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지 않는 게
내가 생각하는 육아의 방법이다.




부모의 책임, 공감


우석훈이 말하는 담백한 육아 방법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놓게 된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혹은 욕심에서 조금 거리를 두게 된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처럼 육아의 모습도 서로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 억지 육아는 모두에게 스트레스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의 삶을 망치는 실수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어디까지가 부모의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부모의 욕심인지 구분하는 일도 쉽지 않다. 나 같은 영어 못하는 부모가 자녀만은 영어로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욕심 그 사이 어디쯤인 것 같다.


하지만 자녀가 나의 육아 혹은 교육 방식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가령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낸 후 아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지, 스트레스에 못 견뎌하고 있는지 잘 살피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다. 아이와 함께 공감하고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지, 자녀의 진로를 부모가 억지로 개척해가는 것은 욕심이다. 아이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하는 일이야말로 부모의 가장 큰 행복이자 즐거움, 그리고 책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영어유치원은 못 보내지만 아이의 마음만큼은 항상 귀기울일 줄 아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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