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희 Nov 30. 2018

육아, 고단하지만 후회가 남지 않도록

대한민국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

2014년 2월 17일. 태한이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지난 5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나 모르겠다. 밤잠 못 자던 신생아 시절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밥 먹는 것도 쉬하는 것도 혼자서 한다. 사실 아이가 더 컸다는 기쁨보다 일 하나 줄었다는 기쁨이 더 크다. 임신부터 출산, 육아의 과정은 모두 신세계였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두려웠다. 이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행복과 즐거움, 기쁨들이 쌓여가는 것만큼 피로와 스트레스도 쌓여갔고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갔다. 새로운 가족을 얻은 일이 아름답기만 하면 좋겠지만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고통과 슬픔, 아픔도 그 안에 있다.


참 많은 돈이 든다


출산부터 육아까지 참 많은 돈이 든다. 아내가 임신한 후 나라에서 카드가 나왔다. 산부인과 비용 50만원을 지원해준단다. 좋아했다. 하지만 병원은 생각보다 자주 가야 했고, 갈 때마다 했던 초음파 비용은 적지 않았다. 50만원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산후조리원이란 시스템도 처음 알았다. 출산 후 2주 정도 산후조리와 함께 육아의 도움을 받는 일종의 육아 연착륙 시스템이다. 태한이가 태어나던 해는 조리원 비용이 200만원 내외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자리가 없어서 못 간다. 아마 지금은 더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육아용품들. 갓 부모가 된 이들보다 좋은 마케팅 대상이 있을까 싶다. 갓(GOD)고객이다. 좋은 것, 안전한 것, 예쁜 것... 부모의 높은 기준은 돈을 부른다.


나라에서 지원받은 것 중에 큰 도움이 된 것도 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후 저렴한 비용으로 도우미분을 고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소득기준에 따라 지원되는 것이라 보편적 지원사항은 아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는 이런 대부분의 비용을 각 가정에서 부담해야 하는데 이것이 녹록지가 않다.


병원 대신 보건소 가고, 산후조리원 대신 집에서 산후조리하고, 육아용품들은 빌려 쓰면 되지 않냐고 할지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런 지적은 옳은 개소리 정도인 것 같다. <88만원 세대>로 유명한 경제학자 우석훈은 자신의 육아 에세이 <오늘 한 푼 벌면 두 푼 나가고>를 통해 한국의 고단한 육아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상당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출하지 않으면 엄마가 아이에게 그만큼 미안하게 느끼게 하도록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짜여 있다.


저자의 지적이 옳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철학이 있는 부모가 아니라면, 주위의 시선과 권유, 한국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외면하고 살기 어렵다. 더군다나 하나밖에 없는 내 자녀를 위한 소비라는 점에서 나의 소비 철학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몸과 마음도 모두 바쳐야 하는 육아


육아는 돈만 드는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과 밀도 높은 정성이 투입되어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생명체를 길러내는 일, 고난이도의 도전 과제다.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야 하는 육아. 그래서 부모들은 많은 것을 포기한다. 본가든 처가든 부모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일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더라도 야근이 있을 때, 아이가 아플 때 등 예기치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일부러 연차를 쓰지 않는 엄마 직장인들도 보았다. 언제 아이가 아파서 집에서 돌봐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도 장인어른, 장모님은 일하시고, 본가는 대구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곳이 전혀 없었다. 오롯이 엄마, 아빠가 책임져야 하는 육아. 잠시라도 쉴 틈을 내기 어렵다는 게 참 힘들다. 가끔 처가댁에 들러 아이를 봐주시면 그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아내는 일보다 살림을 좋아했다. 맞벌이 부부가 겪어야 하는 난관들을 거치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종일 말 못 하는 아이의 수발을 드는 일은 무척 고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반복은 더욱 그렇다. 나는 퇴근 후에, 그리고 주말에 육아에 모든 것을 쏟았다. 간신히 낮잠을 재운 뒤 가지는 1-2시간의 꿀맛 같은 여유가 이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커피 한 잔에 책 읽는 시간도 사치처럼 여겨지던 시절이다.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이 힘들어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한다. 몇 시간만이라도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면 뭐든 한다. 그리고 나가면 돈이다. 키즈카페나 물놀이 시설이나 아이가 좋아할 만 곳에 돈을 내고, 온 가족 외식비용을 지불한다. 36개월 전이면 그나마 무료인 곳도 많지만 어른 2명 값은 어디든 내야 한다.


즐거운 육아를 위해서는 지역 안에 무료로 또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아시설들이 많아야 한다. 단순히 놀꺼리, 시간 때우기 차원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많으면 좋겠다. 이런 것이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사회가 해주어야 하는 일이다. 우석훈의 글을 인용한다면 ‘부담 없이 문화를 느끼고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런 게 사회가 갖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고단하지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아이가 다섯살이 되니 확실히 몸은 편해졌다. 스스로 하는 일이 많아 손이 덜 간다. 최근에는 옷도 혼자서 벗고 입는다. 내가 마음이 급해서 입혀줄려고 해도 꼭 자기가 하겠단다. 팔 넣는 구멍 하나 찾는 일도 쉽지 않지만 혼자서 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대견하다.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티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시간도 늘었다. 태블릿으로 혼자 ‘컷더로프’ 라는 게임을 하고 있기도 한다. 티비를 오래 보거나 게임을 오래 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하지만 부모가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집중해서 해야할 일이 있거나 너무 피곤하면 그냥 내버려둔다. 나도 살아야지.

몸이 편해지는 대신 아이와 정서적인 갈등이 빈번히 일어난다. ‘미운 네 살’ 같은 말이 괜히 만들어 지는 게 아니다.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아이의 자아가 점점 강해진다. 욕심이 많아지고 고집이 세진다.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아빠를 때리기도 하고 눈을 흘기기도 한다.


내가 경찰 부를꺼야. 아빠 잡아가라고


무섭다. 그 때 아빠의 위엄을 보여주려고 혼내기라도 하면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자기 방도 아니면서. 그러다보면 나도 점점 열받기 시작하고 ‘내가 이러려고 이 녀석을 애써 키웠나’ 싶다. 내 마음도 다섯살 아이처럼 삐친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가엾다는 듯이 쳐다본다. 아내는 아이를 확실하게 제압하는데 나는 그게 안된다.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문 밖을 빼꼼히 쳐다본다. 분위기 파악하다가 슬그머니 걸어나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아빠를 아주 호구로 보는 건가 싶다가도 아이랑 싸워서 뭐하나 싶다. 악역은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착한 아빠 코스프레 하면서 아이와 재밌게 놀아야지 한다. 평소에 함께 있는 시간도 길지 않으니까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얼마 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아빠 놀이 백과사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아빠가 집에서 아이들과 놀 수 있는 100가지 놀이를 담은 책과 카드를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다. 늘 아이와 뭐하고 놀아야 하나 고민할 때가 많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몇 주 후에 아빠 놀이 백과사전 책과 아빠 놀이 카드를 받았다. 소리 오래 지르기, 하이파이브 하기, 신문지 격파하기 등등 쉽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놀이가 담겨 있었다. 처음엔 반신반의 했다. 이런 게 정말 통할까? 몇 가지 놀이를 함께 했더니 아이가 너무 재밌어하고 좋아했다. 며칠 지나자 아이가 먼저 내게 말한다.

“아빠, 아빠 놀이 카드 하자~”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은 웃음으로 채워줄 비장의 무기다. 그런 생각도 한다. 아이와 언제까지 이렇게 놀 수 있을까.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친구들이랑 노는 게 재밌을테다. 그러고보면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출근길. 고단하지만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이전 06화 결혼이 주는 최고의 선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