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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04. 2018

외동 아이도 괜찮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가족 계획에 대하여

둘째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태한이가 두 돌 되던 해부터 아내와 둘째 계획을 고민했다. 결혼 전부터 아이를 두 명 이상은 낳자고 얘기했었다. 외동으로 자라면서 외로움이 많았던 아내는 태한이를 외동으로 키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반대로 삼남매의 막내로 자란 나는 형제들의 소중함을 느껴 보았기에 태한이에게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형제가 있기를 바랬다. 둘째를 가지려면 나이 터울이 크지 않았으면 했다. 올해는 아이를 가져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이상하게 둘째를 생각하면 체한듯 가슴이 답답했다.

경제적인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나면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도 내 아이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다양한 경험도 많이 시켜주고 싶다. 부족하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둘째까지 감당할 수 있을 지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돈 때문에 둘째를 포기하기는 것도 아쉽다. 없으면 없는대로 키울 수도 있다. 돈이 없지 사랑이 없을까. 사실은 더 큰 걱정이 있었다.

나는 심각한 퇴행성 허리 디스크로 의사 말로는 3kg 이상은 들면 안된다. 태한이도 신생아 때를 제외하면 제대로 안아 준 기억이 없다. 아내가 힘들게 육아를 할 때도 몸으로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늘 아이를 안고 힘쓰는 일은 아내가 담당했다. 엘레베이터 없는 5층 빌라를 유모차 들고 오르내리는 일도 아내 몫이었다. 둘째가 생기면 아내가 얼마니 고생할 지 불보듯 뻔했다. 내 마음도 미안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의 역사


대학 3학년 때 처음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당시엔 아침에 일어나는 일부터 고역이었다. 허리가 펴지지 않아 할머니처럼 구부린 채로 간신히 일어났다. 머리를 감을 수도 없어 그냥 샤워기에 샤워를 해버렸다. 아침마다 이 고통이 반복되었다.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누워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편하지 않았다. 심각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일 년 휴학을 하고 대구에서 재활의 시간을 가졌다. 수영을 시작했다. 허리 재활에 수영만한 운동이 없다고 했다. 6개월 정도 지나자 재활치료와 운동을 통해 허리 통증은 거의 없어졌다. 학교와 사회생활을 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제 허리 디스크로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10년 후, 결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였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처음엔 어쩌다 그런 거겠지 했다. 하지만 그 증상이 매일 나타났고 회사 동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10년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척추 전문 병원에 갔다. 역시 허리 디스크가 심각하다며 바로 레이저 시술을 권했다. 시술 후 몇 달간은 허리 통증이나 불편함 없이 지냈다. 하지만 비슷한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결혼 직후 함께 받았던 종합건강검진에서도 허리 디스크 소견이 나왔지만 오래전에 치료되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 화근이기도 했다. 결국 나의 ‘건강불감증’이 병을 키운 것이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은 벌이다. 가정이 있는 사람에겐 내 몸이 내 것만이 아니다. 내가 아프면 가족 모두가 아프다. 가족 모두가 힘들다.

허리디스크에 정통한 명의(名醫)를 찾아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 받고 치료방법을 알고 싶었다. 3개월을 기다려 강북삼성병원의 S 교수님의 진료를 볼 수 이었다. 아내도 함께 진료실에 들어 갔다. 교수님은 내 MRI 사진을 보시더니 내가 아닌 아내를 보며 말했다. 


이 사람하고 헤어져요


“네?”
“이 사람 이대로 가다간 장애인되니까 헤어지라구요”

이게 무슨 말인가.

“여기 디스크가 쌔까맣죠. 젊은 사람들은 여기가 하얗게 나와요. 이건 60대 할아버지 디스크 색깔이에요. 그만큼 디스크가 압박을 많이 받았다는 거죠. 이거 치료 못해요. 누가 수술이나 시술하라고 하면 다 사기꾼이야.”

“그러면 뭘 해야 해요?”

“걸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들 걷는 운동하시는 것처럼 걷는 운동하세요. 빨리 걷는 운동. 절대 뛰시면 안되요. 걸으면서 허리 주변 근육을 단련시켜야 해요.”

“수영 같은 것도 안되나요?”

“지금은 안돼요. 걷는 거 말고는 안되요.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근육이완제 드릴 테니까 허리 아프시면 꾸준히 드시구요. 운동 열심히 안하면 장애인 되요. 열심히 해요”

멍 했다. 내 상태가 이정도였나. 나도 아내도 충격이었다. 난 그 동안 뭘 한건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병원을 나오며 아내가 한 마디가 했다. 


나 완전 사기결혼 당한거네!



우리 둘째 가지지 말까


연애할 때만 해도 멀쩡하던 허리가 망가져 버렸으니 ‘사기결혼’ 이라 할 만 하다. 그 날 후로 아내는 힘쓰는 일은 무조건 못하게 했다. 회사에서도 내 허리가 얼마나 상태가 안좋은 지 자주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일을 안시킨다고. 실제로 회사 동료들도 항상 힘쓰는 일에는 나를 배려해줬다.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했다. 몸이 안좋으니 여기저기서 민폐다. 아들에게도 미안한 것이 많았다. 다른 아빠들이 다 태워주는 목마 한 번 태워주지 못하는 것, 몸으로 실컷 놀아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다. 둘째가 생기면 태한이에게 미안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아무래도 둘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리 둘째 가지지 말까?”

“왜?”

“둘째 가지면 자기가 너무 힘들거 같아. 자기 힘들면 나도 힘들고. 태한이에게 동생이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완전 저질체력이라 엄청 힘들거고 스트레스 받을테고 분명 태한이한테도 안좋을 거 같아. 자기도 힘든 거 못 견디잖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아내는 서운해했다. 정말 둘째를 갖고 싶어했다. 아이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하지만 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건강을 이유로 아내를 설득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이 우리에겐 ‘특별히’ 힘들 것이란 점, 양육의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줄 거란 점, 둘째가 없어도 우리 가족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아내에게 강조했다. 결국 아내도 나를 위해 동의해주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돌이키지 않기 위해 난 정관수술을 받았다. 아내의 확고한 결심 덕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안하면 내 마음이 계속 바뀔 것 같아


지금도 가끔씩 아내는 나 때문에 둘째를 못 가졌다며 속상해 한다. 하지만 또 어떤 때는 둘째를 안가지길 정말 잘했다고 한다. 아내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피아노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시간 가는 줄 모르며 피아노를 치고 즐거워 했다. 둘째를 가졌으면 어떡할 뻔 했냐고 이야기한다. 아기띠에 태한이을 안고 재우던 과거 동영상을 보다가도 어떻게 또 이렇게 사냐며 수술하길 잘 했다고 한다.

하나도 둘도 모두 괜찮다. 다른 선택에는 다른 아쉬움이 다른 즐거움이 있다. 종종 둘째는 언제 가지냐는 질문을 받는다. 마치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뉘앙스다. 중요한 건 하나인지 둘인지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이 어떤 삶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님이, 친척들이, 옆집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가정을 만들어갈 지는 철저히 우리 가족의 선택이다. 우리는 둘째를 가지길 원했지만 나의 건강 문제로 포기했다. 대신 태한이에게 더 집중하고 나와 아내가 각자의 삶을 더 즐길 수 있는 선택을 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다. 



외동 아이도 괜찮아


그럼에도 태한이에게 동생이 있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이다. 외동이라 더 외롭지는 않을 지, 사회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을 지, 부모를 책임지는 부담이 너무 크지는 않을 지 등등. 하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외동아이에 대한 생각들이 대부분 ‘편견’ 이었음을 알았다.


토니 팔보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외동아이와 형제가 있는 아이의 리더십, 성숙도, 사회성, 유연성, 안정성 등 16가지 속성을 분석한 결과 둘 간의 점수에 차이가 없었고 성취 동기와 자존감에서는 외동이 점수가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겨레) 또한 많은 학자들은 외동의 장점으로 ‘비교와 경쟁의 고통에서 자유롭다’는 점을 꼽는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를 쓴 미국 시카고대 교수 존 카치오포는 “자녀가 많은 가족은 형제끼리 비교당하고 종종 고통스러울 정도로 차이가 강조되기 때문에 가정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출처: 한겨레21 제1029호 ‘외동아이, 외롭지도 이기적이지도 않다’) 형제의 수 보다는 부모의 양육 태도가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둘째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아내의 사랑과 올바른 양육태도이다.

나의 하루 일과는 스트레칭으로 시작한다. 잠깐이지만 꾸준히 스트레칭을 한 이후로 허리 때문에 크게 아픈 적은 없었다. 내게는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 나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조금이라도 몸이 편해지면 금새 건강을 챙기지 않는다. 그 게으름을 조심하고 운동을 철저히 습관화해야 한다. 그래서 아침 스트레칭 시간을 더 늘리고 퇴근 후에는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가족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전혀 아깝지 않은 노력이다. 선택이 아닌 필수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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