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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24. 2018

'나다움'을 잃으면 삶을 잃는다

나답게 사는 삶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정치인이었지만 이제는 작가와 예능인으로 더 알려진 유시민. 그의 베스트셀러 책 중 하나인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 저/아포리아)에는 한국의 현대사를 통과하며 희노애락을 겪었던 오십대 남성의 인생론이 담겨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그의 답은 간결하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하지만 전제가 있다. 무엇보다 자기방식대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내가 바라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인용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기방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당연하게 들린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선택하는 삶인 것 같지만 때로는 주어진 환경이 내 삶을 선택하거나 강요하기도 한다. 저자의 삶도 그랬던 것 같다. 현대사의 물줄기를 타고 흐르며 그는 ‘하고 싶은 일’ 보다 ‘해야 하는 일’ 을 했다. 독재 정권에 맞서 저항하고, 정치 개혁을 위해 정치권에 뛰어들었던 것은 ‘소명과 명분’은 있었지만 그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옳은 일이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나다운 일인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가 아쉬워하는 지점이다.

그가 말하는 성공한 인생은 간단하다. 내가 즐거운, 나다운 일을 하는 삶이다.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이제는 온전히 ‘작가’ 로서의 삶을 사는 그는 절반은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그의 말에 공감한다. 동시에 현실 직장인인 나에겐 아직 먼 이야기 같다. 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즐거운데. 글쓰는 일로 밥벌이까지는 하지 못한다. 지금 하는 일도 의미있고 보람있지만 더 즐거운 일을 ‘직업’ 삼고 싶다. 



장래희망은 여전히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글쓰는 것이 좋았지만 직업으로 고민한 것은 20대 중반에 잠시뿐이었다. 성공한 인생에 대한 정의는 삶을 경험하고 배우면서 조금씩 바뀐다. 10대에 꿈꾸는 삶과 30대에 꿈꾸는 삶은 다르다.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직접 부딪히면서 깨달아 가기 때문이다. 남이 가르쳐 준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성공에 대한 생각도 나이를 먹으며 달라졌다.

10대 시절의 장래희망은 1순위는 경제학 교수였다. 경제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10대의 꿈은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돌을 꿈꾸고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길 바란다. 20대가 되면 좀 더 현실적이 된다. 머리 속이 복잡하다. 좋아하는 일, 재밌는 일, 안정적인 일, 돈 많이 주는 일 등등 고민의 연속이다. 그러다 결국 합격 문자를 보내주는 회사에서 일을 한다. 장래희망이 취업이다.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이미 성공한 인생 처럼 느껴졌다.

30대. 먹고 살만해져서 일까. 일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돈벌이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더 의미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났는가?’ 그냥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 땅에서 더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돈은 중요하지만, 돈을 위해 살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과 세상에 기여하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여겨졌다. 이타적 삶이야말로 성공하는 인생의 길이라 믿었다.

40대를 앞둔 지금은 유시민의 생각에 더 가깝다. 단순히 의미있는 일 보다 ‘나다운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으며, 내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나의 정체성과 생각을 드러내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나 자신을 훼손하지 않는 일이면 좋겠다. 멋져 보이는 일, 재미있는 일, 의미있는 일... 모두 좋지만 결국 나 답게 살 수 있는 일을 할 때 더 행복할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 의미뿐 아니라 행복에도 중요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이 하는 일들이 ‘who am I?(나는 누구인가?)’와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어야 행복(즐거움)과 의미 모두를 강하게 경험한다. 자기정체성을 구축하고 그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 <굿 라이프>



'나다움'을 잃으면 삶을 잃는다


직장과 가족 관계 안에서도 나다움을 추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회사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내게도 즐거움이다. 일과 가족을 위한 희생과 인내도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나다움을 잃어버리면 일에 대한 열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기 어렵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느낄 거절감, 실망감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직장 상사나 아내, 아이가 요청하는 것이 있으면 왠만하면 들어주려고 한다. 상사의 업무지시를 군말없이 따른다든지, 늦은 밤 피곤해도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본다든지, 주말 아침 7시부터 일어나 태한이와 레고 놀이를 한다든지. 주변 사람의 바람에 부응하려고 나의 욕구를 절제할 때가 있다.


모범적인 부하직원, 다정한 아빠의 본보기라고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무조건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타적인 행동들이 지속되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있다. 자신의 욕구에도 충분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의 마음이나 상태는 아랑곳 않고 동료와 가족들의 욕구에만 집중하다 보면 금새 지쳐버린다.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번아웃’에 이른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 일이다. 아내는 입덧이 심했고 냄새에 민감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겨도 몇 입 먹다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빈 속이 되면 메스꺼움을 느껴 헛구역질을 했다. 몸이 힘들고 지치니 감정도 예민해졌다. 나는 최대한 아내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아침에도, 퇴근 후에도 계속 아내의 상태를 살피며 필요한 것을 챙겼다.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그러기를 몇 주. 하루는 냄새가 너무 역하다고 해서 냉장고 청소를 하기로 했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냉장고 안의 음식물을 모두 꺼내 버리고 서랍칸과 내부를 깨끗이 씻었다. 냉장고 청소를 끝내고 나니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투정을 할 수는 없었다. 가장 힘든 건 아내였으니까. 그날 밤 나는 온갖 먹을꺼리를 사와서 폭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안에서 올라오는 서러움이 내려가지 않을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먹는 걸로 푸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과도한 인내와 절제는 독이다.




심리학자 애덤그랜트는 <Give & Take>라는 책을 통해서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소개한다. 기버(Giver), 매처(Matcher), 테이커(Taker) 이다. 기버는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에 먼저 관심을 둔다. 매처는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의 균형에 신경 쓰며, 테이커는 타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키우는 데 관심이 있다.


저자는 이들 중 성공 사다리의 맨 밑바닥뿐 아니라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도 모두 '기버'라고 한다. 자신보다 타인의 이익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다니, 일반적인 통념에는 벗어나는 주장이다. 베푸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지금은 "협업"이 성공의 중요한 요소이다. 다양한 역량의 팀원들로 구성된 팀 중심의 업무체계를 이룬다.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기버는 이 협업 환경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드러낸다. 하지만 모든 기버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사다리 맨 밑바닥에도 기버들이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성공한 기버는 이타적인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되 남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며, 자신의 욕구와 이익에도 집중한다. 이러한 태도는 성공한 기버들이 쉽게 지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베푸는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반면, '이기심 없이' 베풀기만 하는 기버는 자신의 이익을 하찮게 여기고 도움을 받는 것을 불편해 한다. 결국 타인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치고 육체적, 정신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덕분에 에너지를 유지하는 성공한 기버가 실패한 기버보다 더 많이 베푼다. (중략) 성공한 기버는 실패한 기버보다 덜 이타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소진한 에너지를 회복하는 능력 덕분에 세상에 더 많이 공헌한다.


결국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나다운 삶을 살아갈 때 모두가 행복하다. 때론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이기심이 직장동료와 가족들에게 더 많이 베풀도록 돕는다. 한쪽으로 깊이 기울어진 행복은 오래갈 수 없다. 나다움을 놓치지 않는 삶이야말로 이타적이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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