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
취업준비생 시절. 매일 밤마다 써 내려간 자기소개서는 나를 자괴감에 빠뜨렸다. 불안감이 밤낮 가리지않고 몰려왔다. 스스로 삶을 꾸려갈 수 없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블로그를 시작한 건 그 때쯤이었다. 단순히 어딘가에 몰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동안은 다른 잡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동안엔 걱정도, 긴장도, 불안도 잠잠해들었다. 당시엔 딱히 블로그에 뭘 적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들에 대해서 적었다. 드라마, 애니메이션, 책, 영화, 음악, 만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리뷰를 썼다. 아무도 읽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서 그렇게 써 내려갔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다. 평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관련 기업에 들어갈 수 있어 기뻤다. 주로 했던 업무는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를 운영하는 일이었다. 취업 후 일년 정도는 블로그 포스팅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감을 찾은 시기였다. 직장 생활도 처음엔 재미있었다.
하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되니 지루해졌다. 1년이 지나자 이직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일이 즐겁지 않고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블로그 포스팅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심리상태와 글쓰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네이버 계정으로 쪽지가 도착했다. 네이버에서 보낸 쪽지인데 드라마 리뷰 관련 블로그 글을 네이버 메인에 노출할테니 계속 공개 설정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놀랐다.
‘내 글이 네이버 메인에 나온다고?’
그 후로도 블로그 메인페이지나 네이버 메인에 글을 노출하겠다는 쪽지를 몇 번 받았다. 내 글이 네이버에 노출되는 날이면 블로그 방문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내 글에 공감한다는 댓글도 달리고 재밌게 봤다는 쪽지를 받기도 했다. 기분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봐준다는 것도 좋았지만, 내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경험이 흥분되고 즐거웠다.
그 후로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에 재미가 붙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공감할 수 있을 지 고민하면서 포스팅을 했다. 직장 생활에서 잃었던 재미를 블로그를 통해 찾았다. 더 열심히 드라마도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게임도 했다. 블로그를 위해 그리고 내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니 네이버가 내게 ‘파워블로그’ 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파워블로그를 선정한 첫 해였다.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네이버는 ‘오늘의 책’이라는 책 리뷰 코너도 운영하고 있었다. 1기 오늘의 책 리뷰어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선정되면 매달 온라인서점 상품권을 제공해준다고 했다. 혹하는 마음에 블로그에 썼던 글로 신청을 했는데 리뷰어 선정까지 되었다. 내 글이 오늘의 책을 통해 소개되는 것도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다.
당시엔 글 쓰기가 재밌다고 느꼈지만 내가 글 쓰기를 좋아하거나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못 쓰는 건 아니구나 정도였다. 블로그 글에 대해 가까운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글을 꾸준히 써 본 적도 없고 잘 쓴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도 없다. 때로는 포스팅 하는 일이 상당히 귀찮았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억지로 쓸 때도 있었다. 그저 문화 콘텐츠를 좋아해서 관련 리뷰를 썼던 것 뿐이다. 운이 좋아서 여기저기 소개될 수 있었다고 여겼다.
삶이 힘들고 재미없을 때 글을 쓰게 된다. 취업준비생일 때 블로그를 시작한 것처럼 일년 전부터는 이 곳 ‘브런치’ 에 글을 썼다.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 글로 표현하는 일이 재밌다. 책의 주제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고민꺼리, 궁금해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항상 내 삶과 일상에 연결되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책에 대한 리뷰 같지만 사실은 내 이야기다. 책을 통해 받은 영감을 내 이야기 속에 슬쩍 밀어 넣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한다. 술자리에서 말이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 평소에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을 이성이 통제하고 있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그 욕망의 봉인이 해제된다. 나의 경우는 삶이 고단해지면 말하고 싶은 욕망이 커지는 것 같다. 책을 빌어 그리고 글을 빌어 내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렇게 라도 말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글을 쓸 때는 퇴고의 과정이 가장 재밌다. 거칠게 써 내린 글을 한 문장 한 문장을 조금 더 간결하고 정갈하게 다듬는 과정이다. 마치 그림의 스케치를 마무리한 다음 정교하게 색칠을 하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글이 새로운 옷을 입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마침내 글이 완성되었을 때 흐뭇하고 만족스럽다. 생명도 형체도 없지만 내가 들인 정성 때문인지 내 새끼 같은 마음이 든다. 때론 자랑스럽고 때론 사랑스럽다. 물론, 많이 부끄러울 때도 있다.
관심있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SNS에 글을 공유했다. 부끄러웠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와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보다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댓글들이 기뻤다. 글쓰기는 쓰는 행위 자체도 즐겁지만 쓰여진 글이 공감받는 과정은 더 즐겁다.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어느 날 옛 직장동료가 내 글에 진심 어린 댓글을 달아주었다.
“재희샘은 글을 쓰시면 참 좋을텐데 하며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제가 ‘재희샘은 언젠간 글을 쓰게 될 것 같아’라고 생각했었다면 이 일은 맞는 일. 그 분이 기획하신 일이라고 말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한참을 못 보고 지낸 동료를 댓글로 만나 놀랐다. 따뜻한 격려의 말에 용기가 생겼다. 고마웠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누군가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다. 내 삶을 글쓰기를 통해 드러내고 타인과 공감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즐거워하는, 나다운 일이라는 마음이 든다.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이제야 내가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삶 속에 숨겨진 보물 하나를 찾은, 그런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