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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을 평생 하면 좋겠어

내가 바라는 삶을 향해 오늘도 춤을 춘다

by 재희

인생은 춤이다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비타케가 쓴 <미움받을 용기>에 등장하는 ‘철학자’는 ‘청년’에게 어떻게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인지 조언한다. 공감이 되었던 내용 중 하나는 인생이 선(線)이 아니라 점(點)의 연속이라는 말이다. 인생이 선이라면 잘 닦여진 등산로와 같이 정해진 길을 따라걷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화목한 가정 등 자신이 원하는 삶의 선로를 설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 우리 인생이 그리 순탄하던가. 계획대로 되는 삶은 없다. 걷다보면 어느새 길이 사라질 때도 있고 안보이던 길이 눈 앞에 나타기도 한다. 예상 못한 장애물 때문에 걷지도 못하고 쉬어야 할 때도 있다. 인생은 선이 아닌 찰나의 연속일 뿐이다. 찰나와 찰나는 이어질 때도 끊어질 때도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게. 인생이란 지금 이 찰나를 뱅글뱅글 춤추듯이 사는, 찰나의 연속이라고. 그러다 문득 주위를 돌아봤을 때 “여기까지 왔다니!” 하고 깨닫게 될 걸세. 바이올린이라는 춤을 춘 사람 중에는 그대로 전문 연주자가 된 사람이 있을 거야. 사법고시라는 춤을 춘 사람 중에는 그대로 변호사가 된 사람이 있을 테고. 집필이라는 춤을 추고 작가가 된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 어쨌든 저마다 다른 장소에 다다를 거야 (중략) 그래. 춤을 출 때는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춤을 추면서 어디론가 가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지. 그래도 춤춘 결과 어딘가에 도달은 하겠지. 춤추는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아.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비타케가 저/전경아 역/인플루엔셜)


인생은 춤이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이 곳에서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 목적지를 상상할 수는 있지만 어디에 어떻게 도착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 인생도 그랬다. 순탄하게 곧은 선이 아닌, 이리저리 해매인 스텝 자국만 남았다. 삶의 순간 순간 나를 위한 선택을 했고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 여기’ 내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작가, 새로운 꿈


글 쓰는 일이 남은 인생의 직업이 되면 좋겠어


그렇게 작가로의 전업을 마음 먹었다. 육 년 후 마흔다섯에는 글로만 먹고 사는 삶을 살면 좋겠다. 이제 그 꿈을 향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도 계속 쓰고 책도 내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에 도전할 것이다. 물론, 마흔 다섯에 내가 어디에 도착해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지금 내가 살고 싶은 삶에 충실할 뿐이다. 아내에게도 내 꿈을 들려줬다.

“와- 그렇게 되면 진짜 좋겠다! 그럼 하루종일 자기와 함께 있을 수 있잖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맥락의 반응이었지만 어쨌든 아내도 적극 지지해주었다. 그 날부터 아내는 나를 ‘박 작가님’ 이라고 불렀다. 낯간지러웠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내는 언제나 나의 첫번째 독자다. 블로그에 올릴 글을 써 놓고 공개하기 전 제일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아내는 늘 정직하고 솔직한 독자다. 그래서 아내의 피드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내가 글을 읽는 동안은 긴장 상태이며 어떤 반응이 나올지 두렵다. 아내가 ‘뭐 괜찮네’ 하고 한 마디 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드디어 글이 공개된다.


아내는 내 인생의 일등 독자이기도 하다. 아내의 동의와 지지가 인생을 살아가는 자신감이 되고 용기가 된다. 작가가 되는 꿈도 아내가 반겨주고 있으니 이제 글쓰기라는 춤만 열심히 추면 된다.

본격 작가되기 춤의 첫 번째 스텝이 바로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이다. 일년동안 썼던 책 리뷰들을 책이 아닌 나의 이야기로 바꿔서 썼다. 거기에 내가 삶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조금씩 보탰다. 내 또래 아빠, 엄마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어떻게 행복한 내 삶을 꾸려갈 수 있을 지 고민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비슷한 삶을 살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책쓰기’에 관한 책을 먼저 읽었다. 먼저 읽기를 잘했다.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과 책을 쓰는 일은 완전히 관점이 다른 작업이다. 블로그는 자기만족적 글쓰기기 가능하다. 내가 좋으면 되지 남들의 반응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책을 낸다는 것은 시장에 상품을 내어놓는 일이다. 즉 소비자의 욕구와 욕망을 생각하고 만들어야 한다. 15,000원짜리 텍스트 상품이 어떤 가치를 담아야 소비될 수 있을 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처음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관점이다. 책쓰기에 대한 새로운 공부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회사에 다녀와서 밥 먹고 아들과 조금 놀다보면 하루가 끝이 난다. 주말에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잠시 외출하고 오면 밤이 된다. 글 쓸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큰 숙제였다. 글 쓴다는 이유로 가족과의 시간을 줄이고 싶지는 않았다.


출근 전 이른 새벽과 주말 태한이 낮잠 시간 정도를 활용했다. 따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지도 않았다. 식탁에 앉아 태블릿 PC 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 글을 썼다. 새벽의 30분-1시간 정도 시간이 가장 글이 잘 써졌다. 피곤하긴 했지만 정신은 맑았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항상 말하는 것이 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꾸준히 글을 쓰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계속 쓰다보면 몸이 그 상황을 기억하고 익숙해져서 글이 써진다는 것이다. 무조건 쓰고 또 쓰는 것이 글쓰기 훈련의 정석이다.


나중에는 글을 쓰고 싶어서 출퇴근 시간에도 계속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휴대폰으로 글을 썼다. 처음엔 불편하고 글 쓰는 기분이 안 들었다. 하지만 매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집에서도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게 편할 정도다. 그렇게 4개월 정도 글을 썼더니 초고가 완성되었다. 처음엔 ‘내가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쓰고 쓰고 또 쓰다보니 일단 여기까지 왔다. 최선을 다해 글 쓰는 춤을 추었다.

내 삶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려가는 것이 재밌다. 일이라기 보다 놀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었다. 글을 쓰고나면 피곤한 것이 아니라 뿌듯하고 보람이 느껴졌다. 내 삶이 가득 채워지는 같았다. 그 기분이 좋아서, 그런 삶이 좋아서 ‘작가’의 춤을 시작했다. 나의 첫 번째 과제에 사람들이 어떤 점수를 매길 지 궁금하다. 낙제점이어도 할 수 없다.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 이 춤을 멈추고 싶을 때까지 난 계속 쓸 것이다. 내가 바라는, 나다운 삶을 위해 오늘도 한 스텝 한 스텝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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