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의 장래희망을 찾아서
이십대 후반, 직장생활을 3년정도 하고 나니 현실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직장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현실은 죄여오는 성과 압박과 사내 정치였다.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무언가 더 재밌고 멋있게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 내게 ‘특별한 재능’이 없음을 새삼 느꼈다.
나랑 비교할 사람들은 아니지만 보통 재능있는 사람들은 빠르면 10대, 늦어도 서른 전에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김연아나 박태환 같은 운동 선수는 10대에 이미 자신의 영역에서 깃발을 꽂았다. 서태지가 스무살에 '난 알아요' 를 발표했고 신해철이 스무살에 무한궤도의 리더였다. 조용필은 스무살에 밴드에 스카웃 되어 미8군 무대에 섰다. 문학 분야는 조금 더 늦은 데 좋아하는 소설가인 김영하, 성석제는 모두 이십대 후반에 등단을 했다. 하지만 나의 이십대 후반에는? 아무 것도 없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내 인생 그냥 이렇게 회사 일에 끌려가며 끝나는 것일까. 다른 길은 없을까. 나는 앞으로 뭐 해먹고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머릿 속에 가득하던 때 도움이 되는 글을 하나 보았다. 애자일컨설팅 김창준 대표가 블로그에 쓴 글이었다.(http://agile.egloos.com/m/4570504) ‘난 앞으로 뭐 해먹고 사나?’ 라는 질문에 대해 그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남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것을 일로 삼자는 것이다. 그래야 행복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직장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그 일을 발견할 수 있을까? 여기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알려면 다음 질문에 답을 해봐야 한다.
‘다른 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기분이 왠지 울적할 때, 하기 싫은 일을 하다가 진절머리가 날 때 당신은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하고 나면 기분이 유쾌해지고 살아있는 기분이 들던가요? 그걸 하면서 몰입하게 되나요?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아니 심지어는 내가 돈을 내고서라도 그 일을 하고 싶은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다.
둘째, 내가 무엇을 잘하는 지 확인할 때 필요한 질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당신은 훨씬 진도가 빠르고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나요? 남들에게서 그 일로 찬사나 칭찬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가족, 애인, 동료, 선배, 후배 등에게 내가 잘하는 것이 뭔지 강점이 뭔지, 실제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사례’ 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지속 가능한 지 즉, 밥벌이가 가능한 지 확인하는 질문이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 중에서 남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일로 남들에게서 감사를 받아본 적이 있나요? 그 일을 남들에게 가치있는 형태로 변환(번역)할 수 있나요?’
좋아하는 일을 통해 삶을 유지하는 것. 가장 어려운 관문이다. 하지만 젊을 땐 첫째와 둘째 관문만 통과하더라도 과감히 도전해볼 수 있다. 삶을 지속하는데 드는 비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인생에 있어 최고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방황하던 이십대 후반의 나는 첫 번째 질문 조차도 통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 보다 ‘해야하는 일’ 또는 ‘의미있는 일’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사는 방식이었다.
서른아홉, 지금의 ‘나’는 그 때와 다르다. 지난 십년의 시간 동안 쌓여온 삶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인생에서의 많은 시도와 실패, 그리고 배움을 통해 이제야 ‘좋아하는 일’을 묻는 질문 앞에 설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좋아하는가" 질문을 너무 빨리 묻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싫어한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이 질문에 긍정이건 부정이건 대답을 하려면 한 번 최선을 다해서 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블로그 <애자일 이야기>
생계의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더라고 내가 좋아서 열심히 했던 일을 떠올려 보면 역시 글쓰기다. 나는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기분이 왠지 울적할 때,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글을 쓸 때 몰입하게 되고 기분이 유쾌해지며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글 쓰는 일을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책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 출퇴근 길에서도, 아이와 놀다가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도 글을 어떻게 써야할 지 고민이 된다. 그리고 그 고민이 즐겁다.
글쓰기가 잘 하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정도 ‘실제 사례’를 생각해봤다. 하나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카오 브런치를 운영할 때 내 글이 포털사이트에 노출된 경험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에게 공개해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글은 쓰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는 내가 근무했던 회사 동료들에게서 내 글에 대해 좋은 피드백을 받은 경험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평가를 다 믿지는 않는다. 관계상 굳이 나쁘게 얘기해서 불편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냉정한 평가자인 아내의 평가만은 신뢰한다. 내 감정을 배려해서 일부러 좋은 말을 해줄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마지막 사례가 바로 아내의 피드백이다. 아내는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에 대해 좋은 피드백을 꾸준히 주었다. 개선점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래서 용기가 생겼다. 만약 아내의 평가가 없었다면 난 이렇게 책을 내겠다는 용기 조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밥벌이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 내 입장에서는 마지막 질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 해도 처자식을 먹여살릴 수 없는 일이 무슨 소용일까.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유명한 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글만 써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면, ‘공감’과 ‘위로’ 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어려운 과제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공감하며 위로 받는다.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나만 유난히 힘든 것이 아니었구나’ ‘다들 힘들지만 잘 버티며 기운내고 있구나’ 싶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당장 직업을 바꾸려는 것도 아니다. 천천히 길게 보려고 한다. 글도 계속 쓰고 책도 내고 나만의 콘텐츠를 쌓아가며 실력을 키우다 보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5년 뒤, 10년 뒤에라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꾸준히 준비하려고 한다.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을 것 같으니까. 긴 호흡으로 좋아하는 일을 나의 직업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