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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재희 Sep 08. 2019

6살 아들에게 선물하고픈 교육

<평생유치원(Lifelong Kindergarten)> 미첼 레스닉

입시 전쟁 속에서 내가 배운 것

나는 학창 시절 주입식 입시 교육에 완벽히 적응했다. 이해력과 암기력이 좋았고, 성적을 위해 인내하고 절제하는 생활에 금세 익숙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오전 6시 50분 등교, 밤 11시 30분 하교 생활을 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만 16시간 40분. 소위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한 ‘특별반’ 소속이었다.

즐겁지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입시 지옥 안에서, 그나마 우위에 있다는 그 어설픈 우월감이 그 시간을 버티게 했다. 나는 서열 전쟁의 긴장감과 승리감을 즐겼다.

치열했던 입시 전쟁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사실 ‘배운다’는 생각은 없었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기술 습득과 반복 훈련이 있을 뿐이다. 수능 고득점을 위한 기술을 익히고 정답을 맞히며 오답을 비켜가는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것이 전부다.

결국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오래 앉아 있는 법

하고 싶은 거 안 하고 견디는 법

재미없는 것 계속하는 법

시키는 대로 하는 법

실수하지 않는 법

사람을 점수로 평가하는 법

그렇게 공부해 다행히 상위권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다음은? 이정표 없는 인생에서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객관식 시험의 기술은 있었지만, 행복한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적극적으로 이끌어갈 능력은 없었다. 나는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 다양한 ‘고시(高試)’를 기웃거렸다.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정답이 있고 범위가 정해진 시험을 준비하는 일이 익숙하고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 12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6살 아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삶

아들은 6살이다. 아들은 내가 걸었던 길을 걷지 않길 바란다. 지루한 공부를 하며 자신을 점수로 평가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성장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행복하고 의미 있게 설계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앞에 두려움 없이 마주 서며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어른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입시 위주의 공교육으로 빚어낼 수 있는 삶은 아니다. 새로운 가치와 지향점을 가진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 MIT 미첼 레스닉 교수의 <평생유치원>을 읽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가진 창의성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구 성과들이 자녀 교육에 대한 영감을 줄 거라 믿었다.

<미첼 레스닉의 평생유치원> 미첼 레스닉, 최두환 역, 다산사이언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창의적 두뇌로 성장시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들이 앞으로의 삶을 제대로 준비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질문이며, 지난 30년간 내 삶과 일에 동기를 부여한 질문이기도 하다

창의적 사고는 언제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중심 요소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창의적 두뇌로서의 삶은 경제적 보상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기쁨, 성취감, 목적, 그리고 의미를 제공한다. 커가는 우리 아이들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적어도 이 정도는 마땅히 보장받아야 한다

다시, 유치원으로

레스닉 교수는 ‘유치원’의 교육 방식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 천 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바로 '유치원'이라고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프뢰벨(Friedrich Froebel)이 1837년 독일에서 처음 유치원을 열었을 때, 이것은 단순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아니었다. 기존 학교 형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교육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책 제목뿐 아니라 MIT 연구그룹의 이름을 ‘평생유치원(Lifelong Kindergarten)’이라고 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요즘 유치원은 점점 더 일반 학교와 비슷해지고 있지만 레스닉 교수는 오히려 모든 학교, 그리고 모든 생활의 터전이 진정한 유치원처럼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치원의 교육 방식이 가지는 특별한 점은 창의적 사고를 발달시키는 창의적 학습의 선순환에 있다.

창의적 학습의 선순환 (이미지 출처: 미첼 레스닉의 평생유치원)

창의적 학습의 선순환은 창의적 사고의 원동력이다. 아이들은 선순환 과정을 겪으면서 창의적 두뇌가 되기 위한 능력을 개발하고 다듬어나간다. 유치원 아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상상), 그것을 시도하고(창작), 대안을 실험하고(놀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공유-생각),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방법을 배운다.(상상)

실제로 아들과 블록 놀이를 할 때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놀이가 이어진다. 아들은 악당을 물리치는 우주선을 상상하며 직접 블록으로 만든다.(상상-창작) 우주선이 우주를 날아다니며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놀이) 하지만 너무 크고 길게 만든 우주선은 쉽게 부러진다. 아빠가 만든 우주선은 작지만 잘 부러지지 않는다.(공유-생각) 그걸 본 아들은 자신의 우주선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멋있고 안정적으로 새롭게 만들어 본다.(다시, 상상-창작)

유치원의 교육 방식과 학교 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세 가지다. 첫째, 유치원의 학습은 재밌고 즐겁다. 나의 상상에 기반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관심도 없는 지식과 정보를 달달 외우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둘째, 지식이 머리에서 멈추지 않고 손으로 이어진다. 상상을 창작으로 이어가는 활동을 통해 내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검증할 수 있다. 셋째, 공유와 성찰을 통해 함께 성장한다. 서로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함으로써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 철저히 ‘나’의 지식에만 집중하는 교육과는 다르다.

결국 우리가 유치원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직접 만들어 보는 법

하고 싶은 것을 더 잘하는 법

시키지 않은 것도 시도하고 도전하는 법

실수를 통해 배우는 법

타인과의 공유와 협업을 통해 성장하는 법

새로운 교육으로, 새로운 삶을

레스닉 교수는 유치원의 교육 방식이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 MIT 미디어랩 대학원 프로그램의 교육 방식이기도 하다.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기획, 실행하면서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른 연구자들과의 공유와 협업을 통해 성장을 이끈다.

또한 <평생유치원>은 창의성 발달을 위한 네 가지 구체적 교육지침인 ‘창의적 학습의 4P’를 제시한다. 이 지침은 자녀 교육에도 해당되지만 모든 어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이들은 반드시 곱씹어 보고 적용해볼 만한 내용이다.

(창의적 학습의 4P) 이것은 프로젝트Projects, 열정Passion, 동료Peers, 놀이Play로 구성된다. 요약하면, 우리 연구 그룹은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아이들이 ‘놀이’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동료’들과 협력하여 ‘프로젝트’에 ‘열정’을 가지고 빠져들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관심이 있다면 이 글에 담지 못한 자세한 내용을 책을 통해 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책의 말미에 레스닉 교수가 보여준 확신이 인상 깊다.

아이들이 창의적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창의적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더 많은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프로젝트, 열정, 동료, 놀이의 힘을 증명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고 문서화해야 한다.
이것은 분명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다. 나는 이것에 내 인생을 걸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모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내일의 창의적 사회에서 적극적이고 완전한 참여자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교육이 인생을 좌우하는 만능열쇠는 아닐지라도,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나침반임은 분명하다. 당신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어떤 교육을 선물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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