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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an 20. 2018

한국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우석훈

태한이가 우리 집에 찾아온 지 만 4년이 된다. 이 짧지 않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나 모르겠다. 밤잠 못 자던 신생아 시절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밥 먹는 것도, 쉬하는 것도 혼자서 한다. 사실 아이가 더 컸다는 기쁨보다는 일 하나 줄었다는 기쁨이 더 크다.


임신부터 출산, 육아의 과정은 신세계였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두려웠다. 이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행복과 즐거움, 기쁨들이 쌓여가는 것만큼이나 피로와 스트레스도 쌓여갔고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갔다. 아주 넉넉한 집이 아니라면 육아는 어느 순간부터 경제적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는 <88만원 세대>로 유명한 우석훈의 육아 에세이다. 표지에는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육아 경제학'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 육아에 대한 두 아들 아빠의 경험담이자 제언이다. 초보 아빠들에겐 훌륭한 육아 가이드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보며 태한이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즐겁게 떠올 수 있어 좋았다.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 육아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짚어본 것도 의미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죄책감 부르는 사회


출산부터 육아까지 참 많은 돈이 든다. 아내가 임신한 후 나라에서 카드가 나왔다. 산부인과 비용 50만원을 지원해준단다. 좋아했다. 하지만 병원은 생각보다 자주 가야 했고, 갈 때마다 했던 초음파 비용은 적지 않았다. 50만원은 그야말로 순삭. 산후조리원이란 시스템도 처음 알았다. 출산 후 2주 정도 산후조리와 함께 육아의 도움을 받는 일종의 연착륙 시스템이다. 태한이 태어나던 해는 200만원 내외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자리가 없어서 못 간다. 그리고 각종 육아용품들. 갓 부모가 된 이들보다 좋은 마케팅 대상이 있을까 싶다. 갓고객이다. 좋은 것, 안전한 것, 예쁜 것... 높은 부모의 기준은 돈을 부른다.


나라에서 지원받은 것 중에 큰 도움이 된 것도 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후 저렴한 비용으로 도우미분을 고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소득기준에 따라 지원되는 것이라 보편적 지원사항은 아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는 이런 대부분의 비용을 각 가정에서 부담해야 하는데 이것이 녹록지가 않다. 병원 대신 보건소 가고, 산후조리원 대신 집에서 산후조리하고, 육아용품들은 빌려 쓰면 되지 않냐고 할지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런 지적은 옳은 개소리 정도인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상당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출하지 않으면 엄마가 아이에게 그만큼 미안하게 느끼게 하도록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짜여 있다.


저자의 지적이 옳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철학이 있는 부모가 아니라면, 주위의 시선과 권유, 한국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외면하고 살기 어렵다. 더군다나 하나밖에 없는 내 자녀를 위한 소비라는 점에서 나의 소비 철학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육아한다, 고로 포기한다.


육아는 돈만 드는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과 밀도 높은 정성이 투입되어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생명체를 길러내는 일, 고난도의 도전 과제다.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야 하는 육아. 그래서 부모들은 많은 것을 포기한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부모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일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더라도, 야근이 있을 때, 아이가 아플 때 등 예기치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일부러 연차를 쓰지 않는 엄마 직장인들도 보았다. 언제 아이가 아파서 집에서 돌봐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도 장모님은 일하시고, 시댁은 대구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곳이 전혀 없었다. 오롯이 엄마, 아빠가 책임져야 하는 육아. 잠시라도 쉴 틈을 내기 어렵다는 게 참 힘들다. 가끔 장모님 댁에 들러 아이를 봐주시면 그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아내는 일보다 살림을 좋아했다. 맞벌이 부부가 겪어야 하는 난관들을 거치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종일 말 못 하는 아이의 수발을 드는 일은 무척 고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반복은 더욱 그렇다. 퇴근 후에, 그리고 주말에 육아에 모든 것을 쏟았다. 간신히 낮잠을 재운 뒤 가지는 1-2시간의 꿀맛 같은 여유가 이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커피 한 잔에 책 읽는 시간도 사치러럼 여겨지던 시절이다.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이 힘들어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한다. 몇 시간만이라도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면... 뭐든 한다. 그리고 나가면 돈이다. 키즈카페나 물놀이 시설이나 아이가 좋아할 만 곳에 돈을 내고, 온 가족 외식비용을 지불한다. 36개월 전이면 그나마 무료인 곳도 많지만 어른 2명 값은 어디든 내야 한다. 즐거운 육아를 위해서는 지역 안에 무료로 또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아시설들이 많아야 한다. 단순히 놀꺼리, 시간 때우기 차원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많으면 좋겠다.


부담 없이 문화를 느끼고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런 게 사회가 갖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몇 군데 추천한 곳이 있다. 남산애니메이션센터, 서울역사박물관, 국립어린이과학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이다. 개인적으로도 KBS 방송체험관, 서울시립과학관도 좋았다. 모두 무료 거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서울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점이 아쉽다.



다섯 살, 부모의 고민은 깊어진다


우리는 어린이집을 조금 늦게 시작했다. 세 돌 즈음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어린이집도 함께 알아봤다. 신도시라 젊은 부부가 많다는 것은 예상했지만 단지 내 어린이집은 택도 없었다. 맞벌이도 다자녀도 아니고.. 가까운 곳에는 갈 곳이 없다. 대한민국의 치열한 육아 현장에 본격 진입했음을 느꼈다. 결국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인근의 가정 어린이집을 택했다. 그런데 일 년 만에 또 큰 결정을 내려야 했다. 가정 어린이집은 만 3세까지만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살.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시기이다. 우리는 더 큰 어린이집, 국공립 유치원 이 후보에 올랐다. 잠깐이지만 영어유치원도 후보에 올랐다. 커서 영어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긴 고민이었지만, 도저히 월급으로 감당할 비용이 아니었기에 이내 접었다. 사립 유치원도 비용은 높은데 별다른 장점이 없다고 느꼈다. 작년 12월 국공립 유치원 입학원서를 내고 추첨을 기다렸다. 결과는 후보 200번대. 깔끔하게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사실 유치원이 되어도 고민은 있었다. 1시 반에 수업이 끝나면 이후 시간은 어떡할 것인가? 방과 후 시간에 대한 대안이 없었다. 결국은 사교육으로 귀결되는 구조이다.


미안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여력이 된다면 영어유치원에 보냈을 것 같다. 하지만 영어유치원이 아이의 삶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기가 어린이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말을 배운다. 실은 그것조차도 엄청난 스트레스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기본 수칙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영어보다 중요한 건 우리말이고, 우리말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평온일 것이다.


'가고 싶은 곳이 되는 것' 그게 유아 교육 기관의 기본이다.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말 잘 듣는 아이라고 칭찬받고 싶어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참으면서 버티는 것은 길게 보아 좋지 않다. 더구나 다섯 살, 여섯 살짜리에게 할 교육은 아닌 것 같다.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워가도록


사실 책에는 육아문제에 대한 진지한 분석보다는 저자가 아이들과 보낸 행복한 일상이 더 많이 담겨있다. 내가 태한이와 함께 한 시간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일상이었는지 느끼게 해준다. 때론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그 아쉬움은 미래에 대한 건강한 다짐으로 바뀐다. 책을 덮을 즈음엔 육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태한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나만 잘하면 된다', 소위 이해찬 세대의 교육방침이었다. 하나만 잘하게 하는 것은 매우 기능적인 선택이고, 경쟁이 극한으로 치닫는 시점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의 세계는 많은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결정하고, 그 사이의 과정들을 원활하게 조정하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사회일 것이다. 한 가지만 잘해서도 곤란하고, 자기 것만 고집해서도 곤란하다. 소통과 조율, 이런 것은 경쟁과 정반대에 있는 속성이다.


안 그래도 외동으로 혼자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는 고립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고민하는 게 우리가 고려할 육아의 제 1원칙 인지도 모른다. 남과 같이 지내는 데 익숙해지는 법,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조율하는 법, 보고 싶지 않을 때도 모질게 밀어내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법... 다섯 살, 여섯 살을 거치면서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다.


경쟁을 너무 강조하면, 자식이 하는 경쟁에 어느덧 부모도 같이 뛰어들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부모가 해주어야 할 것은 협업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 또 내 아이를 사랑하듯이 다른 아이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마음이 살 만한 사회를 만들고, 결국 내 아이에게 플러스로 돌아온다.


저자가 제안하는 육아의 방향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의 논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 다른 방식의 삶을 선물하자는 제안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가장 큰 책임, '공감'


나의 삶도 내 뜻대로 안 되는데, 어떻게 자녀의 인생을 내 뜻대로 하겠는가. 고유한 마음과 생각을 가진 한 인격체를 내 의도대로만 움직인다는 것은 '폭력'이다. 아이는 괴롭고 부모는 지친다. '부모의 허망한 욕심이 자녀의 미래를 망친다'는 저자의 지적 그대로다.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육아는 어떤 모습일까.


지나치게 힘쓰지 않고, 과하게 돈 쓰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지 않는 게 내가 생각하는 육아의 방법이다.


저자의 담백한 육아 방법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놓게 된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혹은 욕심에서 조금 거리를 두게 된다. 육아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처럼 육아의 모습도 서로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 억지 육아는 모두에게 스트레스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의 삶을 망치는 실수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어디까지가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욕심인지 구분하는 일도 쉽지 않다. 나 같은 영어 못하는 부모가 자녀만은 영어로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어려움을 겪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녀가 그 공간에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아이와 함께 공감하고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지, 자녀의 진로를 부모가 개척해가는 것은 욕심이다.


아이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하는 일이야말로, 부모의 가장 큰 행복이자 즐거움, 그리고 책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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