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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Feb 25. 2018

보통의 행복을 찾아서

<해피니스 트랙> 에마 세팔라, <행복의 기원> 서은국

다시, 행복


작년 여름 즈음. 보통 직장인의 ‘출근하기 싫어병’ 정도였을까.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다. 알 수 없는 불안이 마음을 죄여 왔다. 그 마음을 떨쳐보려 새벽에 기도도 해보고, 출근길에 책도 읽었다. 모두 허사였다. 업무시간에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메일로, 메신저로, 입으로 전달되는 업무들 가운데 마음은 집중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헤매었다. `잘 해야 한다` 는 부담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내 마음을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누르고 있었다.


퇴근길은 잠시 가벼웠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보는 즐거움. 하지만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아들과 자동차 놀이를 하며 우주를 여행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여전히 쉬지 못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긴장한 채 달리고 있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서글픈 마음이 몰려왔다. `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베개닢이 젖기 전에 아내 품에 얼굴을 묻어버린 밤들이 있다.


다시 `행복`을 생각한 이유다.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번듯한 직장과 사랑스러운 가족이 있는 삶이어도 그 속까지 번듯하고 사랑스럽기는 쉽지 않다. `행복하고 싶어` 메아리처럼 울리는 마음의 고백은 `어떡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막연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행복을 글로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두 권의 책을 골랐다. 행복한 삶의 방법론을 소개하는 <해피니스 트랙>. 행복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연구결과를 정리한 <행복의 기원>이었다.



Lesson 1. 행복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것


#잘못된 행복 방정식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에마 세팔라는 <해피니스 트랙>을 통해 성공과 행복의 관계를 새롭게 제안한다. 먼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학교, 사회 속에서 주입받은 `성공`의 관점과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기 계발에 집중하며 스트레스를 견디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학, 조직행동, 신경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최신의 연구 결과들은 오히려 행복이 성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행복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과거의 생각들은 우리의 삶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망가뜨릴 뿐이다.


나도 경력과 직급이 올라가면서 스트레스도 함께 쌓여갔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나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었다. 영어 공부 같은 자기 계발에 대한 압박감도 느꼈다. 연차를 이틀밖에 쓰지 않았던 해도 있다. 끊임없이 무언가 일을 하거나 일에 대한 생각을 해야만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일을 통해 인정받는 것이 존재의 이유인 것처럼 살았다. 책은 이런 내게 적절한 조언들을 해주었다. 무엇보다 일에 쫓겨 살아가는 삶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쫓는 성공과 명예, 부가 결국 모종의 지속적인 만족감을 안겨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이 프로젝트만 끝내면, 또는 저 목표만 완수하고 나면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거라고 기대하곤 한다. (중략) 하지만 목표를 이루고 난 후에도 마침내 행복해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 모든 스트레스와 불안과 과로, 그리고 그로 인한 건강 이상까지 감내하며 얻어낸 보상의 만족감은 그저 잠깐 머물다가 사라져 버린다.


#행복은 현재에 충실할 때 찾아온다


현재의 괴로움을 참아내며 기다리고 있는 행복은 신기루와 같다. 미래를 위해 일 중독에 빠진 삶을 살면 심신은 쇠약해지고 일의 생산성은 떨어지며 성과 중심의 인간관계로 인해 빈번한 갈등을 겪게 된다. 반면, 미래 목표에 집중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태도가 일의 생산성과 행복감을 높여주는 것으로 연구 결과 나타났다. "현재를 즐기라"는 흔한 조언이 과학적으로 옳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현재에 집중할 때, 즉 현재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할 때 정서적인 행복도가 가장 높아진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는가 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해 행정적 서류를 작성하는 것과 같은, 일반적으로 별로 즐겁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일지라도 거기에 100퍼센트 집중하면 마음을 딴 데 두고 뭔가를 할 때보다 행복감이 더 높아진다


또 다른 연구들은 마음이 눈앞의 현재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가 있는 상태가 부정적인 기분과 밀접히 연관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머릿속이 과거 또는 미래의 일로 가득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확률이 더 높다. 예컨대 미래의 일만 자꾸 생각하면 마음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일어난다.


그럼 현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앞의 대상과 상황을 온전하게 경험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대신 속도를 늦추고 곁에 있는 사람과 `진정으로` 함께 있는 것, 대화하고 있는 주제에 `몰입`하는 것, 눈앞의 일에 `100퍼센트 집중` 하는 것이 열쇠다.


결국 행복은 몰입의 경험에서 나오고 이를 위해 내 마음을 현재로 데려와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자각`이다.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분주해진 마음을 깨닫고 그 마음을 현재에 붙들어 매는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 시간들이 삶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게 된다.



Lesson 2.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행복의 핵심은 '사람'이다


<해피니스 트랙>이 행복에 접근하는 방법에 주목했다면, <행복의 기원>은 인간이 왜 행복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는지에 주목한다. 저자는 행복을 정서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으로 보지 않는다. 뇌에서 일어나는 쾌락적 경험이기 때문에 생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행복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과정에서 뇌가 프로그래밍한 경험이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책에서 설명하는 행복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는 ‘사람’이 행복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즐거움도, 가장 큰 고통도 사람으로부터 온다. 직장인들의 이직 이유 1위가 인간관계인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직장 내 인간관계는 생존의 문제다. 살기 위해 옮긴다.)  둘째는 인간은 행복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로또 당첨 같은 큰 기쁨도 3개월을 넘지 못한다. 오히려 큰 행복을 경험했기 때문에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마비시킨다. 더 큰 자극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기쁨의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삶이 더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행복은 ‘유전’된다는 것이다. 유전적 요소가 행복을 결정하는데 50%의 영향력을 가진다. (태어날 때부터 행복한 사람이 결정된다니, 참으로 허망하다!) 사람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들이 행복을 더 느낀다. 그들이 가진 ‘사회성’의 결과다.


덧붙여 개인의 행복은 사회문화적 배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경제적 수준이 높은 국가 중에서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국가의 행복도는 이상할 정도로 낮게 나온다.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다. 집단주의 문화는 때로 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공동체가 하나 되는 경험을 통한 희열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집단 내 규율과 위계질서가 강하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문화로 인해 내가 원하는 즐거움을 찾아가지 못한다. 개인의 행복이 부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선천적 불행아를 위한 조언


책을 읽으며 내린 결론은 내가 진화심리학적으로 행복하기 힘든 인간이란 것이다. 난 선천적인 내향적 성격으로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지 않는다. 다섯 명 이상이 모이는 곳에는 가기가 꺼려진다. 사람이 싫어서라 아니라 사람이 많으면 피곤이 몰려온다. 정말이다. 말이 많은 성격도 아니라 종종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다. 마음이 맞는 두 세 사람이 모이는 모임이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것 같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집단의 규율을 잘 따르고 위계질서에 순종적이었다. 타인의 시선에도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은 것, 즐거운 것보다 남들이 좋고 즐겁게 여기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 험난할 수밖에 없다.


책은 내게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행복한 삶에 대한 두 가지 힌트를 발견했다. 하나는 인간의 행복은 무척 단순하고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거나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먹을 때와 대화할 때. (중략)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다른 하나는 나와 집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위계적이고 획일적인 문화를 깨고 나가려는 개인들의 연대와 노력이 필요하다.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행복한 문화에 사는 사람들은 그녀처럼 자신의 삶과 선택에 당당함과 자신감이 넘친다. 인생의 주도권을 자기가 쥐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부족한 부분이다.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꿈, 가치와 이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 이것이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이다. 그래야 사람의 가장 단맛을 서로 느끼며 살 수 있다.

 



두 권 모두 행복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 관점은 다르지만 행복에 대한 공통된 메시지도 있다. 바로,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래를 과도하게 염려하고 또 기대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산다. 대다수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고등학생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산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행복의 기원)



행복을 글로 배운 후에


그래서 난 행복해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내가 지나는 터널의 어둠이 너무 짙었던 것 같다. 손전등을 켜 보았지만 나가는 길이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알 것 같았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터널의 끝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느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삶에는 행복한 순간들이 많이 있는데
내가 그 순간들을 그냥 지나쳐 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조사를 실시했다. 하루 중 내가 행복하거나 즐겁거나 기쁨을 느끼는 순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상을 전지적 관점에서 다시 보았다. 생각보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은 자주 찾아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마시는 모닝커피

회사 동료들과 나누는 일상의 편안한 대화

동료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었을 때

맛있는 간식을 먹을 때

점심 후 마시는 달달한 밀크티

퇴근길 지하철에서의 독서

퇴근 후 태한이와 함께 노는 시간

저녁을 먹으면서, 그리고 잠들기 전 아내와 나누는 대화

주말 저녁 아내와의 맥주 한 잔

주말 이른 아침 혼자만의 독서 시간

좋은 날씨에 하는 가족과의 주말 나들이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하는 시간

업무에서 새로운 사업을 상상하고 기획할 때


흥분되는 기쁨이나 즐거움은 아니지만, 충분히 삶을 즐길 수 있는 순간들이다. 일상은 행복의 가능성들로 채워져 있다. 괴롭고 힘든 시간들 가운데서도 저 순간들은 모두 존재했다. 그럼에도 나는 왜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까.


내가 지나는 터널 속 어둠이 내 마음까지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부정적 감정들이 가까이 있는 행복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해피니스 트랙>에서는 이를 ‘부정 편향’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기가 훨씬 더 쉽다. 두뇌의 부정 편향 탓이다. 두뇌에 관한 한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셈이다. (중략) 우리는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 나머지 현실도 왜곡된 방식으로 바라본다. 셸리 게이블과 조너선 하이트의 연구는 평소 우리가 부정적인 경험보다 긍정적인 경험을 3배나 더 많이 하는데도 부정적인 경험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삶에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팩트’이다.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우린 부정적인 경험들 보다 더 풍성한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보통의 행복


인생에서 행복한 경험만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삶의 고통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아니다.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깊고 어두운 터널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무기력한 순간들이 있다. 그냥 버티고 견뎌야만 하는 시간들도 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행복의 가능성이다. 비록 지금은 눈물범벅일지라도, 오늘 하루 버티기 힘겨운 삶일지라도 ‘짠!’ 하고 꺼내 들  수 있는 비장의 행복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요즘은 그동안 무시하고 지나갔던 사소하지만 즐거운 순간들을 복원시키려고 한다. 잃어버린 순간들을 다시 발견하고, 그 시간들이 가진 행복의 가치를 온전히 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살다 보면 쉽지만은 않을 일이다. 하지만 내 삶이니까. 더 행복하고 싶으니까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특별한 행복이 아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보통의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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