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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Apr 24. 2020

가슴 저릿하게 아름다운 인생의 진실들

<자존가들> 김지수 인터뷰집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는 이제 명품 브랜드가 되었다. 유명인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삶에 대한 새로운 영감과 지혜를 선물하는 그녀의 글은 생의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서게 하는 힘이 있다.

 

페이스북에 공유되던 그녀의 글을 종종 보았는데, 이어령 교수와의 인터뷰를 읽고는 팬이 되었다. 한 사람의 평생이 녹아든 깊은 통찰의 지혜를 이렇게 편안하게 접할 수 있다니!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함께 써 내려가는 인생의 아름다운 진실은 실로 가슴 저릿했다. 그리고 더 많은 생의 지혜를 탐하고 싶어 졌다.

 

김지수 기자는 자신의 인터뷰를 묶어 두 권의 책을 냈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과 <자존가들>. 그중 최근 출간된 <자존가들>을 읽었다. ‘불안의 시대, 자존의 마음을 지켜낸 인생 철학자 17인의 말’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사실 어떤 멋들어진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이 말하는 생의 진실은 웃음과 눈물, 아름다움과 슬픔이 뒤엉킨 카멜레온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내 삶을 함께 읽었다. 경험으로부터 공감되는 인생의 진실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하나, 인생은 낙관적이다. 인내가 필요할 뿐.


정신의학자 이근후 (출처: chosun.com 기사)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애쓰면 마법처럼 막다른 곳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이게 여든다섯 해를 살아 본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리다.


정신의학자 이근후 선생의 말이다. 저자는 그의 말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렇지,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와도 반드시 살 길이 열리지. 하지만 그의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평안하고 관조적인 뉘앙스는 아니다.


85년 산 노학자의 통찰에 따르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운명”이고, “운명 앞에서 약자인 자신의 처지를 고뇌하며 꿋꿋하게 버텨 내는 게 인간다운 삶”이다.
"인생에 부침이 있고 부침을 잘 견디면 편안한 시기가 다시 찾아옵니다. 그래서 버티는 힘이 필요하지요."


낙관적 미래는 ‘버티는 자’의 것이다. 운명 앞에 무너지지 않고 때로는 굳세게, 때로는 간신히 하루하루 견뎌내는 이에게 인생은 미소를 띤다. 배우 신구 선생의 말도 그렇다. 생의 성실함이 무기다. 버둥거리며 버티고 노력하는 자를 위해 삶은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배우 신구 (출처: chosun.com 기사)


"최고의 연기자는 최고의 성실을 가진 자예요. 재능은 큰 차이가 없어. 시간이 지나면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이 남아요. 재능이 부족한 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거든. 반면 재능 믿고 까불다가 사라진 사람들을 나는 숱하게 봤어요."


<지적인 낙관주의자>를 쓴 심리학자 옌스 바이드너는 인터뷰 중 낙관론자들의 놀라운 능력 중 하나로 ‘거대한 인내’를 꼽기도 했다. 거대한 인내가 없이는 낙관적 미래를 위해 수많은 난관을 헤쳐가는 지난한 도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 인생에는 자기만의 리듬이 있다. 나를 긍정하라.


춤이 뭐라고 생각해요?


“잘해야지 하는 순간, 의미를 상실하는 무엇. 여유의 에너지 같아요.”


누적 조회수 50억, 2,0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대표 안무가, 리아킴. 그녀는 춤에 있어서 누구보다 치열하고 높은 기준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는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나른했다.


안무가 리아킴 (출처: chosun.com 기사)


세상에 ‘박치’는 없어요. 자기만의 리듬이 있을 뿐이죠. 여러분도 집에서 해 보세요. 화장실도 좋아요. 좋아하는 음악 한두 곡 틀어 놓고 마음껏 몸을 흐느적거리는 거예요. 느껴 보세요, 조금씩 차오르는 행복을!


이기고 싶은 순간, 지는 것 같았다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경쟁이 목표가 되어서는 삶이 즐겁지 않다. 내 안의 가득한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발산할 때 삶의 기쁨과 즐거움이 밀물처럼 가슴을 채운다.


그럼, 세상의 경쟁을 뒤로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아도 될까? 그럼 정말 행복할까? 싶다. 마흔 살에 데뷔해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그림책 작가로 떠오른 요시타케 신스케는 걱정 많은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 (출처: chosun.com 기사)


“저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심심한 나를 웃겼더니, 우연히 독자가 생기고 작가가 되었어요. 이건 확실히 운이죠. 그런데 운은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러니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게 다죠. 나를 즐겁게 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해요. 인생은 복잡하지 않아요. 걱정하고 웃고, 걱정하고 웃고, 그런 일의 연속이죠. 그러니 저처럼 용기를 내세요. (웃음)”


문학평론가 이어령 선생의 말도 우리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 세상이 요구하는 평균적 인간이 아닌, 신이 만든 고유한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를 실현해 가는 삶.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래 관찰하면 알아요. 신은 생명을 평등하게 만들었어요. 능력과 환경이 같아서 평등한 게 아니야. 다 다르고 유일하다는 게 평등이지요. 햇빛만 받아 울창한 나무든 그늘 속에서 야윈 나무든 다 제 몫의 임무가 있는 유일한 생명이에요. 그 유니크함이 놀라운 평등이지요.”



셋, 인생은 아름다운 선물이다. 때가 되면 돌려줘야 하는.


이어령 선생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출처: chosun.com 기사)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 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어깨 위를 무겁게 누르던 생의 무게가 이 문장들 속에서 풀썩 꺼져 버렸다. 인생이 선물이라면 집착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선물에는 ‘선의’가 담겨 있다. 신의 선의를 믿고 감사하며 받은 선물을 누리면 된다. 지혜자의 진실된 겸손이자 생에 대한 감탄이다.


세계적인 거장, 화가 황규백에게도 이와 닮은 고백이 있다.

화가 황규백 (출처: chosun.com 기사)


"좋은 음식 먹으면 “와! 너무 좋다” 그러잖아요. 인간이 만든 건데도 신의 선물 같거든. 친구랑 바다 앞에 서면 “와! 너무 좋지?” 그 한마디면 된 거예요. 인생이 얼마나 좋은지, 사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무슨 어려운 설명이 더 필요해요."


하늘의 구름 한 조각에도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삶이다. 그런데 무얼 그리 고달프게 애달아하며 살아가는지.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주제에 우주만 한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사는 우리가 딱하다.


게다가 이 아름다운 선물은 영원히 끌어안고 살 수도 없다. 처음 왔던 곳으로 돌려줘야만 한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시 돌아간다. 이어령 선생의 말이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자에게도 품위가 있어야 한다. 선물을 받고 누렸으니 돌아가는 길도 감사와 즐거움으로 채워야지. 20년간 타인의 죽음과 마주했던 법의학자 유성호는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조언한다.


법의학자 유성호 (출처: chosun.com 기사)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죽음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지 않는 거죠. 죽음이 삶의 마지막 과정이라는 걸 담담하게 인정하는 겁니다. 태어날 때 축복받고 웃은 것처럼, 죽을 때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즐겁게 마무리하는 거죠. 급작스럽게 죽을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고, 주변에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하면서요.”




누군가의 삶과 글을 통해 걸어온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걸어갈 길을 마음으로나마 꾹꾹 다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모두에게 고맙다.


다만 인터뷰를 읽으면서 꼬여버린 내 마음이 눈치 없이 툭툭 건네던 말이 있었다.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이제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으니 인생이 더 낙관적이고 만족스러운 것 아닐까? 힘든 순간에 있는 누군가에겐 이 인터뷰가 그저 꼰대같이 느껴지지 않을까?


나의 욕심이지만,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자기만의 리듬으로 선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인터뷰가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자기 분야에서 명예를 쌓은 의사와 교수, 스포츠 선수, 예술가들만이 인생의 롤모델은 아니니까. 10년, 20년 뒤 나의 미래다 싶은, 보다 현실성 있는 롤모델들의 인터뷰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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