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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숫자쟁이 Jan 23. 2019

이별 극복하기 10년

저마다 상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해운대로 혼자 여행을 떠났었다.  너무 고통스럽던 힘겨운 이별이 조금은 정리되가고 있던 즈음이었다. 

낭만적인 겨울바다를 꿈꿨던 해운대 해변엔 사람 하나 없었고 외로운 갈매기와 꽁꽁 바람막이로 둘러싼 두어개의 포장마차만 덩그러니 있었다. 오뎅 하나를 먹으러 들어가니 손님도 없던 포장 마차엔 조금 훈기가 돌았다. 젊은 청년이 겨울 해운대에 혼자와서 오뎅을 먹고 있으니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주제는 사랑. 나의 이야기에 이어진 아주머니 아들의 이야기.


선생님 직업의 여자친구를 이삼년 만나던 아들이 병원에 있다고 하셨다. 이유 없는 급작스런 이별통보에 이어 다른 사람을 사귀게 된 전여자친구로 인해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인해 투병생활과 통원치료를 오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햇수로 벌써 2~3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우울증에 헤어나오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과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오뎅국물을 저으며 담담히 털어놓으시던 아주머니. 지금도 난 그 이야기를 종종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아들은 지금쯤 회복되었을까.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과 새로운 짝을 만났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별은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기도 한다. 가끔 여러사람의 모임자리에서 이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철없는 로맨티스트로 치부하는 사람들의 젠체하는 말투에는 욱하기도 하지만 나는 주로 가만히 있는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의 이별도 너무 괴로웠다. 나는 집착증이었고 순진한 비현실주의자였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지만 나의 괴로움은 누구의 탓도 아닌 오직나의 문제이자 나만의 병이었다. 이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아파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오직 그 사람에게 발생한 갑작스런 사고이고 그 사고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자신의 것일 뿐이다. 선택을 한다면야 결국엔 빠져나오기는 하지만 선택을 할 힘도 없을 때 누가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이별도 예고 없이 찾아왔다. 너무 좋았고 너무 잘 맞는다고 혼자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사람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엔 좋은 사람이 널렸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정말로 함께하고 싶은 좋은 사람은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꼭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대게 나의 분에 넘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까지 하는 일은 자주 없기 때문이다. 뭐 그때는 우연찮게도 그 사람도 나를 좋아했고 서로의 환상을 서로 좋아했으니 잘풀려서 사귀게 된 것이긴 했지만. 그 때나는 나만의 믿음이 있었다. 진실한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그래서 2년의 만남 후에 그 사람과 헤어진 이후에도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진실로 좋아하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현실과 꿈이 다를 때 머리는 혼란을 겪는다. 나는 길을 걷다가도 주저 앉았고, 아무리 잘될거야라고 주문을 외워도 숨이 잘 쉬어지지도 않았다. 이별은 찾아왔고 재회는 불가능했다. 아무리 믿음을 가지고 주문을 위워도 정신이 제대로 된 사람은 현실이 꿈보다 먼저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록 고통만 길어질 뿐이다.


나는 비자발적으로 현실로 돌아오기는 했다. 나를 애석히 여겨 내 연락을 받아주던 상대가 일년쯤 지나 나의 연락을 더이상 받지 않고 전화번호도 바꾸어버리자 나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정신 멀쩡히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과제였다. 그런일을 겪었기 때문일까. 그 이별 이후로 1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나는 사랑을 해보지 못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썸이라는 것도 없다. 흔히 말하는 사랑을 믿지 못한다느니 이성에 관심이 없어졌다던지 그런 이유는 절대로 아니다.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하나의 이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싱글로 지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마 나는 그때의 그 상대를 아직 사랑하는 모양이다.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주었던 느낌과 환상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 나이 대, 그 사람의 스타일, 그 사람의 성격같은 것들을 아직 사랑하고 있다. 시간이 이렇게 오래 흘러도 내게는 그것들이 가장 완벽했던 모양이다. 아니 나는 그런 것들을 가장 좋아한다. 아마 취향을 바꾸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는 미혼/기혼 친구들과 만나 모임을 가질 때 제발 현실을 찾자고 얘기하는 것이 고정레파토리다. 이젠 과거의 환상과 이성적인 끌림보다 좀더 결혼이라는 결합에 어울리는 현실적인 조건을 맞춰나가자는 얘기다(여기선 외모를 보지말자는 둥 하는 얘기가 꼭 나오고 만다). 말이야 쉽지,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뀔까. 나는 10년 째 다시 한번의 기적을 기다린다. 내가 너무나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기를. 무슨 주문이라도 외워야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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