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함께 걷는 따사로움
장마는 늘 제법 존재감이 있는 속삭임으로 다가온다.
처음엔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로,
이내 대지와 사람의 마음 구석까지 스며드는 눅눅함으로 비에 젖어 얼룩덜룩해진 겉옷과
축축한 신발이 발끝을 무겁게 짓누를수록
그 무게는 곧 내 마음으로 옮겨온다.
그날도 비는 제 할 일을 다하고 있었다.
길 위의 모든 것이 물들고, 무뎌지고, 잠잠해지는 오후, 나는 쏟아지는 빗줄기가 우산을 타다닥 건드리는 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준비되지 않은 하루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우산도 없이 빈손으로 비를 맞고 빠르게 걸어가는 한 친구가 내 앞에 있다.
하나의 우산 아래, 둘이 설 수 있을 만큼의 자리는 좁았다.
하지만 나는 우산을 친구 쪽으로 조금 더 기울였다. 내 어깨가 반쯤 젖는 일은 별일 아니다.
우산 하나로 함께 걷는다는 것은 비를 피하는 일만이 아니라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옷이 젖음을 감수하면서 나눠 갖는 고요,
같은 리듬으로 발을 맞추는 인내, 그리고
그 속에서 스며 나오는 잔잔한 다정함.
장마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불편함 사이로 문득 드러나는 배려는 햇빛 아래서는 볼 수 없는 빛을 품고 있다.
우산의 기울기만큼 나는 친구를 품었고
그 친구 역시 조용히 나를 품는 시간이기도 했다.
상대의 속도에 맞춰 걷는 일이고, 젖은 어깨를 감수하면서도 그저 함께 있는 시간에 의미를 두는 일이다.
그래서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화창한 날씨에서 느껴지는 것과 조금 다른 느낌의 따뜻함이 더 또렷이 보인다.
장마철에는 우산 없이 비를 맞는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우산을 기울이는 마음,
한 공간을 흔쾌히 내어줄 수 있는 배려,
한자 사람 인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도움받고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나의 다짐과 바람이 비와 함께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