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나물

짝사랑 중인 건나물

by 소원상자

건나물은
마른 시간을 안고 있다


한때는 뿌리를 가졌고
흙 속에서 물을 밀어 올리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가벼워
바람에도 뒤집힌다


말려진 것들은
오래 참아 온 것들이다


물에 담가 두면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잠하다가
주름 사이로

천천히 시간을 푼다


접혀 있던 초록이 돌아오고
잎은 물속에서
자신의 모양을 더듬는다


불리지 않으면
영영 펴지지 않을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
혼자서만 계절을 지나
혼자서 늙는다


건나물은
끓는 물속에서
뒤늦게 몸을 놓는다


너무 늦게 찾아온 따뜻함에
잠시 머뭇거린다
그동안 버티고 있던 힘이
붙잡을 것이 없어서였다는 것처럼
젓가락이 집어 올리면
저항하지 않는다


이미 한 번
세상에서 떨어져 본 몸이라서
씹히며 향을 풀어놓고
자신이 어떤 식물이었는지
마지막으로 증명한다


사라지는 방식으로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아무도 모르게 시작되어
아무도 모르게 오래 지속되다
결국
누군가의 하루 속으로 녹아들어
이름 없이 지나간다


그래도 건나물은
불려지고
데워지고
누군가의 몸이 된다


닿지 못한 시간들이
다른 형태로 닿는다


이미 지나갔는데
아직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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