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그릇 속에서
봄이 겹겹이 얹혀 있다
고사리는 늙은 손처럼 구부러져
숲의 시간을 더듬고
도라지는 속 빈 목으로
묵은 말을 끌어올린다
참기름 몇 방울
늦은 햇빛이 표면을 타고 번지면
고추장은 가운데에서
모든 경계를 흐린다
숟가락이 내려오는 순간
뒤섞인 나물들은
“우리”라는 발음을 얻는다
김이 올라
사물들의 윤곽이 잠깐 흐려지고
그 틈에서
산은 아직 식지 않은 숨을 내쉰다
끝내 마르지 않는
얇은 기름막처럼
돌 속에 남아 있던 열이
늦게 올라온다
노른자가 터지며
작은 태양 하나가 무너지고
눌어붙은 바닥이 안에서부터 갈라진다
식탁 위에 놓인
비어 있던 자리 하나가
사람의 자리가 된다
다 먹고 난 그릇 바닥에
참기름이 희미하게 남아
빛을 늦게까지 붙잡고 있다
숟가락은 하나였는데
자리가 하나 더 데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