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이 연민에게 1

by 소원상자

늦은 밤 병원 복도에서
형광등 하나가
지친 어깨들을 희게 눌러 두고 있었다

연민이 연민에게 물었다

― 너는 왜
자꾸 남의 아픔 쪽으로
몸이 기우느냐

연민이 잠시
닫힌 병실 문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 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쪽으로 내려앉아 있는 것이다

조금 뒤
손잡이를 잡은 채로 덧붙였다

― 아픈 쪽이
항상
더 낮은 곳에 있으니까

연민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그러다 너까지
같이 아파지지 않느냐

연민이 희미하게 웃었다

―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오래 붙들지 못한다

― 너무 가까이 가면
자기 상처까지
함께 드러나니까

잠시 어디선가
전기포트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민이 다시 물었다

― 그래도 어떤 사람은
너를 이용하기도 하지 않느냐

연민이 조용히 말했다

―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지 않기 위해
붙잡히는 것이다

잠시 침묵이 길어졌다

연민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 그러다 아무도
너를 찾지 않으면
어디로 가겠느냐

연민이 대답했다

― 나는
찾아가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고개를 들지 않는 자리에서
먼저
발끝에 닿을 뿐이다

밤이 더 깊어지자
복도 끝 자판기 불빛 아래에
종이컵 하나가
식지 못한 채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남겨진 열 한 점이
아직 가라앉지 못하고

입을 다문 물처럼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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