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덜어낸 자리에서
청산은 끝내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물은 어디로 간다 말하지 않아도 흐른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가슴 쪽이 먼저 어수선해진다
잠기지 못한 말 몇이
늦게까지 떠다닌다
귀를 비우면
만 가지 소리가 잦아드는 줄 알았더니
오히려 이름 없는 것들이
가까이 와 앉는다
바람은 여전히 바람인데
솔잎 쪽에서 먼저 흔들리고
달은 드러난 적 없는데
밤은 그걸 알고 밝아진다
묻지 않으려 해도
속에서 몇 번은 다시 묻게 되고
구하지 않겠다던 마음은
돌아서면 슬그머니 따라온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는 쪽을 택한다
한 생각 올라오면
건드리지 않고 두고
사라질 때도
굳이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어디쯤에서 내가 빠져나온 것 같기도 하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더 오래 남는다
비워 둔 자리 하나
손바닥만 한데
자꾸 넓어진다
그래서 오늘은
덜어낸 만큼만 말한다
가만히 두어도 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