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뛰게 하는 책이란

너는 어떤 시를 남길 것인가

by 소원상자

책은 말이 없다.
종이 위에 누워 있는 검은 글자들,
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떤 날,
나는 책을 펼치다가
문득 멈춘다.

아니, 이건 내가 말하려던 문장 아닌가.

말하지 못했던 것,
끝내 인정하지 못했던 감정,
모른 척해온 내가
책 속에서 먼저 살아가고 있을 때.

그때 심장은
한 박자 늦게 따라온다.

사랑 때문에,
실패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날들 때문에
나는 책을 펼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책이 먼저 나를 펼친다.

표지만 봐도 심장이 먼저 움직이는 책들이 있다.

학창 시절,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 아그네스 그레이를
밤을 넘겨 읽었다.

끝까지 무너지고,
버티고,
현실 속에서 살아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래 돌아 나오지 못했다.


조금 더 지나,
죄와 벌을 읽었다.

이유를 만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끝내는 무너지는 한 사람을 따라가며
나는 나를 피해 가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권, 새의 선물.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시선으로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리는 마음을 보며,
나는 나를 조금 늦추게 되었다.


그 무렵,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현재를 붙잡아라, 오늘을 살아라.
너는 어떤 시를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그때의 문장은
나를 앞질러 달렸고,
나는 그 뒤를 헐떡이며 따라갔다.

한참이 지나
다시 펼쳤을 때,
같은 문장이
다른 속도로 나를 지나갔다.


읽는 내가 달라진 탓인지,
문장이 먼저 늙어준 탓인지,
그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온도가 있었다.

한 줄의 문장이
눈을 더 넘기지 못하게 한다.

그 앞에서 나는
읽는 사람이 아니다.
들킨 사람이다.

심장을 뛰게 하는 책은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온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 않니.”

그 순간,
숨이 걸린다.

좋은 책은
곧장 나를 달래지 않았다.

먼저 흔들어 놓고,
그다음에야
한참 뒤에 손을 내민다.

“그래도 살아가자.”

그 말은
책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서
오래 맴돌던 말처럼 들린다.

어쩌면 나는
심장이 뛰는 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뛰고 있는 것을
확인하려는지도 모른다.

심장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묵언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