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인이 듣는 종교음악

by 소원상자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듣는데, 종교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음악은 내게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서 있느냐의 문제다.




절하지는 않지만 고개는 숙이고, 고백하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같다.

이 음악은 굽지 않았다.

정직한 직선으로 내 마음에 들어온다.

가끔 그 직선에 베일 것 같은 날이 있을 만큼.

가사는 얼마나 곧은지.

의심도 없고, 비아냥도 없고, 과시도 없으며

자기 연민도 없다.

기도처럼 무릎을 꿇게 하지도, 유혹처럼 몸을

휘게 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정한 방향으로, 곧게 걸어간다.

종교음악이라 부르기엔 인간의 숨결이 너무 많이 섞여 있고, 세속의 노래라 하기엔 침묵을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경건하다.

그래서 이 음악은 종소리와 동전 소리가 겹치는 지점에 서 있다.




선율에는 장식이 없다.

금박도 없고, 화려한 화음도 없다.

한 음 한 음이 마치 “여기 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존재의 증명은 늘 단순한 법이니까.




정직한 직선의 음악은 자세를 바로 세운다.

요가처럼 등을 펴게 하고, 호흡을 정돈하게 하며,

자기 삶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든다.

어쩌면 신은 이런 음악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눈물보다 태도를, 탄식보다 방향을 더 오래 바라보는 존재라면.

사람이 스스로를 마주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존재라면.

이 정도면, 무교인에게도 과분하다.

그래서 나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확신을

미뤄 둔다.

천국도, 구원도 잠시 보류한 채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얼마나 소란했는지만 살핀다.




종교음악은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당신 자신에게 정직한가.

그 질문 하나로 오늘은 충분히 경건하다.

그래서 오늘도 이 음악은 아무도 손뼉 치지 않는

자리에서도 묵묵히 연주된다.

마치 믿음처럼.

혹은 양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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