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에게

by 소원상자

오늘도 너를 손바닥에 올려두고 나는 부탁부터 한다.
명령도, 기대도 아니고 그냥 아주 작은 부탁.

부디 나를 너무 조용하게 만들지는 말아 줘.
생각이 잠시 잠드는 건 괜찮지만 웃음까지

같이 재우지는 말아 줘.

너는 참 성실해서 슬픔을 규칙적으로 낮추고
불안을 정해진 시간에 덜어내지.
그 점은 고맙다. 정말로. 진심이야.
덕분에 나는 아침을 다시 믿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부탁이 하나 더 있어.
농담을 알아보는 감각, 그 감각만은 건드리지

말아 줘.


나는 유머를 좋아하고 웃음을 정말 사랑하거든.
회복이라는 이름 아래 무표정해지고 싶지는 않다.
안정이라는 이유로 나의 재치를 반납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아직 재미있는 사람이고 싶단다.
나는 덜 아픈 내가 되고 싶지, 덜 살아 있는 내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알약아,
너는 나를 찾아올 때 그저 파도만 낮춰 줘.
바다는 내가 직접 보게 해 줘.
웃음은 내가 헤엄쳐서 직접 건져 올릴 테니까.
오늘도 너를 삼키며 말한다.
잘 부탁해. 그리고 고마워.
나는 살아내는 중이고 웃음은 그 증거로 남겨 두고 싶어.
나는 약을 먹는 중이지만 웃음을 포기한 사람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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