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재촉하지 않는 나의 노트

by 소원상자

노트북을 열면 세상이 먼저 깨어난다.

알림이 켜지고, 시계가 보이고, 아직 쓰지 않은 문장보다 이미 도착한 소식들이 나를 부른다.

커서는 반짝이지만, 그 빛은 생각보다 재촉에 가깝다. 빨리 쓰라고, 더 잘 쓰라고, 어딘가로 보내질 문장을 어서 만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무언의 재촉이 부담스러워 주로 노트를 연다.

종이는 조용하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인터넷도 없고, 맞춤법도 간섭하지 않는다.

문장이 중간에 멈춰도 괜찮다.

종이는 늘 한 박자 늦게 나를 따라온다.

그 느림이 좋다.

노트에 글을 쓸 때, 손은 생각보다 솔직해진다.

속도가 느려서 거짓말을 할 틈이 없다.




문장은 머리보다 손에서 먼저 태어나고,

생각은 키보드가 아니라 심장 쪽으로 기운다.

노트에 쓰는 글은 효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완성보다 동행에 가깝다.

문장 하나 쓰고, 창밖을 보고, 다시 한 줄을 적는다.

그 사이 침묵이 끼어들어 종종 정확한 단어를 데려오기도 한다.




물론 컴퓨터는 빠르고 똑똑하다.

하지만 빠른 것들은 가끔 나를 앞질러 가버린다.

수정도 쉽고, 저장도 빠르다.

세상과 연결되기엔 더없이 좋은 도구이다.

반면에 노트는 세상과의 연결을 끊는 법을 안다.

세상에서 잠시 물러나, 나에게로 돌아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을 알려준다.




노트북 대신 노트에 글을 쓰는 이유는 기술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속도에 대한 선택이다.

조금 느리게, 조금 덜 똑똑하게, 대신 조금 더 진솔한 문장을 쓰기 위해.

그 문장들 덕분에, 나는 오늘을 조금은 나답게 지나간다.

시간을 보관해 주는 노트에게 감사하며 나는 또 펼친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천천히 만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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