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데도 남아 있는 것
늦게 오는 것이 있다.
이미 자리가 다 찬 뒤,
잇몸 아래에서
살을 밀어 올리며 존재를 알리는 것.
나는 왜 끝났다고 믿던 것들을
모든 것이 늦어진 다음에야
다시 품게 되는 걸까.
겨우 정리됐다고 믿던 날,
틈 하나를 비집고 올라와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
욱신거림만 남겨 놓고 간다.
결국 빼내야 할 걸 알면서도
마취 풀린 잇몸을
괜히 혀끝으로 건드려 보고,
비릿한 맛을 삼키면서도
그 자리를 더듬는 건
아픔조차 한때는
내 몸의 일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자란다는 건 더 쥐는 일이 아니라
놓아야 할걸 뒤늦게 알아보는 일 같다.
통증이 지나간 자리엔
조금 넓어진 침묵이 남고,
나는 그 빈틈으로
전보다 많은 숨을 들이쉰다.
잇몸 깊은 곳에서 밀려오다
끝내 사라질 것들조차
한 시절 나를 버티게 했다는 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다.
아프게, 그리고 늦게
웃다가도 혀끝은 그 빈자리를 찾는다.
없는데도 아직은 남아 있는 것처럼.
사랑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