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져도 올라가던 겨울
겨울 논두렁 끝에서
할아버지가 털어낸 비료포대 하나,
바람이 먼저 올라타고
나는 그 뒤에 몸을 접었다.
비료 냄새는 아직 흙을 기억하고
흙은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잠깐 미끄러졌을 뿐인데
어른들은 그걸 모험이라 불렀다.
엉덩이가 시리고
손바닥이 얼어붙어도
한 번 더, 한 번만 더
다시 올라가던 마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비료포대는 하얀 돛이 되어
눈 위를 건너고
나는 선장이 되어
논두렁의 파도를 탔다.
뒤에서 친구들이 웃음을 밀어주면
썰매는 더 멀리 갔다.
우리의 가난도
그날만큼은 속력을 잃었다.
멈춰 서면
신발 속으로 눈이 스며들고
볼은 빨갛게 익었지만
얼었던 몸에 번지던 따뜻함은
주머니 속 햇살처럼
집에 돌아갈 때까지
몸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포대를 끌고
논두렁 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올라갔다.
지금도 가끔 마음이 제자리에서
미끄러지지 않을 때면
나는 기억 속 포대를 펼쳐
그 위에 앉는다.
그리고 혼잣말한다.
괜찮아, 삶은 늘 그 겨울처럼
작은 것들에 실려
생각보다 멀리 흘러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