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빠진 뚝배기 화분

by 소원상자

주방 창가,
세월의 이가 먼저 빠진 뚝배기 하나.
입술이 깨졌어도 아직 김을 품는다.




저녁빛이 금 간 가장자리에 걸려
잠시 머뭇거리고,
금이 간 자리에 국물은 먼저 식고
기억도 틈 사이로 새어 나갔지만
맛은 오히려 깊어졌다.




보글보글 끓던 소리로
말없이 하루를 내려놓던 저녁들,
우리는 조금씩 이가 빠진 채
사랑을 담아냈다.




완전한 것들은 식탁 위에서 잠시 빛나고,
부서진 것들은 말없이 배를 채운다.
오래 따뜻한 것은 늘 조금 모자란 쪽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버리지도, 치워두지도 못한 채
뚝배기는 화분이 되어 놓여 있고,
햇살이 스치고 지나가면
금 간 틈마다 작은 빛이 맺힌다.




그러니 우리의 결핍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저녁이 될지도 모른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말없는 위로처럼.
그릇은 비었는데

이상하게 식지 않는 저녁이었다.




주방 창가,
금 간 그릇은 오늘도 그대로 있고
그 속에 남은 온기가
천천히 나를 데운다.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직 식지 않았고
저녁은 천천히 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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