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이 가지 끝에서 익고
붉은 저녁이 국도 위에 매달린다
트럭 한 대 지나간 자리
소음이 길가에 웅크리고
동전 떨어진 소리만 오래 남는다
아스팔트 아래
보이지 않는 물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운동화에 붙은 껌 같은 오늘을
몇 걸음 더 끌고 간다
버스 정류장 빈 의자 위
모서리 말린 공연 포스터 한 장
시간이 잠시 앉았다 떠난다
간판들은 밤마다 이름을 바꾸고
길은 자꾸 낯선 쪽을 가리킨다
뒤돌아보면
발자국마다 다른 계절이 열리고
젖은 양말을 울며 말리던 밤이 따라온다
차선들은 어둠 위에 번지고
오늘은 발목에 묶인 매듭처럼 남아
그림자가 먼저 횡단보도를 건넌다
나는 잠시 더 남아
길 위의 숨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도 목적지도 아닌
국도의 한 장면으로 남아
마주 오는 차의 불빛을
눈 하나 찡그리지 않은 채
오래 받아낸다
꺼지지 않는 하나의 풍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