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by 소원상자

장독대 곁
저녁빛이 부엌 문턱을 넘어 들어
바람의 그림자만 드나들던 시절,
어머니의 빈 손끝에는
늘 한 줌의 내일이 묻어 있었다.




퍼내도 닳지 않던 것은
곳간의 곡식이 아니라
서로를 기다려 주던 마음이었음을
우리는 오래 뒤에야 알았다.




눈발이 문풍지에 기대 쌓이던 밤,
아버지는 거친 손으로
허공에서 따뜻한 말을 건져
아이들 입가에 조용히 얹어 주었다.




말 한 숟갈에 속이 풀리고,
희망 한 국자에 잠이 깊어지던
작고도 넉넉한 밤들.




화수분은
먼 전설 속 보물이 아니라
서로의 모자람을 덜어 건네던
사람 마음속에서
조용히 넘치고 있었다.




시간이 쌓여 곳간은 채워졌으나
마음은 때로 빈 그릇처럼 울리고,
가득한 식탁 곁에서도
누군가는 아직
식지 못한 체온을
말없이 품고 산다.




그래서 나는
손끝에 남은 따뜻함 한 점을
세상 한켠에 놓아둔다.




기적은
사람들 사이를 건너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고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진다.

우리 안 어디에선가
아직 식지 않은 따뜻함처럼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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