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구는 우리 집 마당에서 태어났다.
영어책에서 막 배운 ‘dog’를 입에 굴리다 보니 소리가 닳아 ‘독구’가 되었다. 거창한 뜻도 설명도 없었다.
독구의 세계는 넓지 않았다.
마당과 논두렁, 개울과 비탈길. 그러나 그곳은 늘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이면 트랙터가 목을 긁듯 시동을 걸었고,
그 소리에 독구는 먼저 고개를 들었다.
닭이 날개를 털면 시간이 조금 밀렸고, 바람이 벼를 눕히면 계절이 기울었다.
독구는 시계를 몰랐다. 대신 흙의 단단함을 알았다.
도시의 개들이 층수와 벨 소리를 배울 때, 독구는 땅을 익혔다.
봄에는 풀린 흙냄새가 먼저 올라왔고, 여름에 매미 울음이 길어지면 그늘도 함께 옮겨 다녔다.
가을에는 벼가 서로 부딪치며 내는 마른 소리를 따라 걸었고, 겨울에는 눈 위에 한참 서 있다가 발을 털었다.
독구의 감각은 늘 낮은 곳을 향해 있었다.
발밑에서 흙이 먼저 움직이고, 풀잎이 먼저 소리를 냈다.
아침마다 마당을 한 바퀴 돌았고, 낮에는 감나무 아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저녁이 되면 문 앞에 엎드렸다.
짖지 않았고,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해가 져도 내가 보이지 않으면 눈만 들어 잠깐 바라볼 뿐이었다.
개울에 빠졌다가 젖은 몸으로 가장자리를 기웃거리던 날, 첫눈이 내리자 하얀 바닥을 향해
몇 번 짖다가 눈송이를 문 채 멈춰 서던 얼굴.
그런 장면들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독구는 느리게 아팠다.
시골의 병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달리던 거리가 짧아졌고,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시간도 줄었다.
그때쯤엔 누가 누구를 붙잡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마당에 서면 독구가 앉아 있던 자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발자국은 사라졌지만 자리는 남는다.
‘dog’에서 ‘독구’로 닳아간 이름처럼, 거칠지만 틀리지 않은 발음으로 살아가는 일.
시골 강아지 독구는 문턱 어딘가에 아직 있는 것 같다.
느긋하고 심드렁한 표정에 잠깐 고개만 들뿐.
과한 반가움은 없지만 눈으로 묻는다.
잘 왔느냐고. 나는 대답 대신 신발을 벗는다.
어디선가 독구가 느긋이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