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건네는 메시지
얼마 전 신간 그림책을 한 권 읽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는 다비드 칼리가 글을 쓰고 마르코 파스게타 그리고 2024년에 출간되었다. 책의 표지에는 빨간색 꽃이 있고 한 남자가 사다리를 타고 커다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은 이탈리아 어로 [Rododendro]라고 하는데, 진달랫과에 속하는 꽃나무로, 진달래 철쭉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철쭉과 그림책에서 묘사된 꽃의 생김새가 다르기도 하고, 이야기의 설정을 고려해 호기심을 느끼도록 번역서 제목을 <작아지고 작아져서>로 했다고 한다.
주인공 자코모는 어느 날 아침 욕실에 갔다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거울의 위치가 묘하게 달라진 것을 보고, 자코모는 거울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서 쿠션을 잔뜩 쌓아 놓고 앉아야 했고
책상도 엄청 커졌다고 느껴졌다. 물건들이 커진 게 아니라 자코모가 작아진 것이다.
작아진 자코모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회사에서 쓰던 살림살이들을 챙겨서 집으로 향하는 자코모는 계속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작아진 자코모는 길을 잃었고 길가의 풀들은 숲처럼 보였다. 방향을 찾으려고 꽃나무 위로 올라간 자코모는 자신처럼 작아진 여자사람 플로라를 만났다. 둘은 함께 집을 찾아 숲을 헤치고 바위를 기어오르고, 개울을 건넜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집은 나오지 않고 둘은 절망하기 시작했다.
그때 플로라가 건넨 한마디는 둘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어째서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없는 걸 찾으려고 이토록 애를 쓸까요? 이미 우리에게 없었던 걸 찾았는데." 둘은 커다란 버섯 위에서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작아진 자코모와 플로라의 시선에서 보이는 세상은 풀도 울창한 숲으로 보이고 개구리도 거대한 괴물로 보인다. 어쩌면 신체적으로 키가 작은 유아들의 시선이 자코모와 같지 않을까. 아이들의 시선은 어른들의 엉덩이에 머물러 있고 높고 커다란 빌딩과 유치원까지의 길은 멀기만 하게 느껴진다.
어른들도 한없이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기치 않게 생겨나는 불행한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것 또한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이 더 많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고 체념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없는 것을 찾으려 하기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받아들이고 플로라처럼 새로이 찾은 것들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신혼 초, 남편과 무척이나 많이 싸웠었다. 성격이 차이 나서, 의견이 맞지 않아서, 서로의 가족으로 인한 불만 등, 이유도 여러 가지였다. 인정욕구가 강한 나는 집에서 살림하면서 애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도 너무도 답답했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내가 원한 결혼생활은 이런 게 아닌데..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해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 청소를 하며 방을 닦고 있었는데,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불만만 얘기하고 있지? 왜 집에만 갇혀있다고 불평만 하고 있었지? 지금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시간들이 갑자기 너무 아깝다고 생각이 들었다.
착하고 듬직한 남편이 가정을 잘 지켜주고 있고 토끼같이 귀여운 아기가 매일같이 방긋 웃으며 내 품에 안기고 있는데 새로이 얻은 이 행복을 왜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는가. 그동안 시간 낭비를 했구나. 하고.
그날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남편과의 싸움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싸움을 아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는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냉전 상태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책 속의 자코모는 시종일관 자를 들고 다닌다. 자신이 얼마나 작아지고 있는지 측정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세상에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만 측정할 수 없는 것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