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은 자극으로 인한 보상의 경험에 의해 분비된다. 사람으로 하여금 뇌의 동기유발을 일으켜 즐거운 기분을 제공하는 뇌의 보상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을 보면 즐거움을 느끼고 더 빠르고 짧은 영상을 찾게 마련이다. 릴스와 쇼츠와 같은 숏폼 영상을 보고 있으면 한 시간,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그런데 머릿속에 남는 건 하나도 없다. 다시는 릴스를 보지 않으리 다짐을 해도 무언가 검색하기 위해 인스타의 돋보기를 누르는 순간 또다시 알고리즘의 이끌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영상, 동물 영상, 연애 이야기 등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 급기야는 1일 SNS 사용량을 최대 1시간으로 내가 내 핸드폰의 제한을 걸어 놓았다. 하지만 비밀번호를 눌러 제한을 풀면 그만이기 때문에 이것도 무용지물이다. 매일매일 핸드폰을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어른도 절제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하물며 초등학생은 오죽하겠는가. 아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다섯 개의 과목에 분량을 정해 공부를 하게 하고, 분량을 다 마치면 게임 한 시간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한 시간의 게임을 위해 아들은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 식당에서도, 병원 대기실에서도, 누가 보면 대단한 공부 영재인 줄로만 보인다. 그렇게 한 달 여간 아들을 믿고 지켜보았는데, 어느 날 아들이 공부한 영어 단어를 읽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알파벳만 주야장천 따라 쓰고만 있던 것이다. 알파벳 따라 쓰는 건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수학 문제집을 체크해 보니 더 가관이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풀 수 있는 문제였는데 생각조차 하기 싫어서 별표 쳐놓고 넘어간 것이다. 실로 게임을 위한 공부 하는 척 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아들의 나이였을 때, 여름이면 강가에서 수영을 하고 겨울이면 뒷산에서 눈썰매를 타고 놀았다. 어디든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있어서 누구든 상관없이 같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사방치기를 했다. 어릴 때를 돌이켜 보면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려면 학원을 가야 하고 5살 6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일주일 내내 학원 스케줄이 빽빽하다. 엄마들이 친구를 만들어주어야 또래와 노는 경우도 많다.
아들은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형제가 없이 외동으로 자라고 있는 것도 이유이겠지만 스마트폰, 아이패드 같은 전자기기의 맛을 들인 터라 게임보다 더 흥미로운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들은 공부하기 싫다고 울먹인다. 가만히 앉아서 글자만 보고 있어야 하니 지루한 건 당연한 일이다. 공부는 머릿속에 지식을 넣기 위함이 아니라 머리를 회전하기 위함이다. 공부 자체의 의미를 알고 공부를 해야지 게임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부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해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면서 해답을 찾는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원하는 답을 찾았을 때 느끼는 희열 또한 공부의 매력이다. 하지만 요즘이 아이들에게는 수학 문제 하나 풀어서 느끼는 희열보다 게임에서 아이템을 하나 더 획득하는 게 더 큰 즐거움이 되어 버렸다. 이미 접해 버린 전자기기 때문에 늦어버린 건 아닐까 염려되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 아들과 보드게임 상자를 열었다. 이제는 나를 가뿐히 이겨버리는 아들. 엄마를 이기고 신나서 활짝 웃는 아들의 표정이 해맑다. 이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가족들의 얼굴을 마주 보고 웃는 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