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육아동지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며 남편의 관사에서 살았던 1년이 지나고 서울로 돌아와 복직했다.
남편은 내가 복직하기 전에 보령으로 발령이 나 내려갔다.
아이들은 새로운 어린이집에, 나는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간지도 모르게 정신없는 나날들이었다.
첫째의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다음날.
겨울의 찬바람에 아이들의 면역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아침부터 기침과 콧물을 보이는 애들을 데리고 결국 소아과에 갔다.
대기가 길다. 대기석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 봤지.???
아. 맞다. 유치원 오리엔테이션.
평소의 내 성격이라면 먼저 다가가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을 텐데.
어쩐지 그날은 먼저 말을 붙였다.
"한가람 유치원... 맞죠? 어제 봤어요."
그렇게 나의 또 다른 인연은 시작되었다.
첫째 은솔이의 반평생 단짝친구 혜주.
둘째 은빈이의 찐한 친구 연주.
그리고 나와 평생친구가 된 혜주 엄마.
그날 병원 진료가 끝나고 첫째들은 함께 놀이터에서 놀았다.
같은 아파트 단지. 같은 유치원 같은 반. 나이도 성별도 같은 동생들. 맞벌이. 우리는 너무 비슷한 환경이라 금세 친해졌다.
더구나, 일하는 분야도 비슷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았다. 성향도 비슷해서 아이들 키우면서 고민되는 부분에 대한 의견이 상당 부분 일치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급하게 아이들을 픽업할 수 없거나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주변에 부탁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는 워킹맘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첫째 어린이집 다닐 때 알게 된 지인이 있었지만 전업맘이었던 그분은 내게 한 번도 본인의 아이들을 부탁한 적이 없었다. 몇 번 신세를 졌지만, 늘 나만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인지 혜주엄마에게는 급한 상황에 도움을 요청해도 마음 한편에 무게가 훨씬 가벼웠다. 내가 다음에 도와줄 기회가 분명 있을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말이나 평일 저녁 종종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 야근이나 회식이 있을 때면 서로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점점 더 끈끈한 육아동지가 되어갔다.
남편이 없어도,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던 순간들이다.
첫째들은 초등학교에 가서도 정규수업 후 돌봄 교실에서 함께 지내며 둘도 없는 단짝 친구로 지냈고, 둘째들도 같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점점 더 친해졌다.
첫째 아이들은 많은 것을 함께 했다. 방과 후 수업도 함께 듣고, 수영장도 함께 다니고, 영어학원도, 피아노 학원도 함께 다녔다. 은솔이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혜주는 플루트를 배웠다. 그 둘은 함께 학원 연주회에서 협연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더 이상 학교에 고학년 돌봄이 없을 때, 아이의 점심문제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었다. 혜주엄마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함께 점심을 먹도록 준비하기로 했다.
도시락을 배달받아 함께 먹기도 했고, 밀키트를 함께 조리하고, 각자의 엄마들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나눠먹었다. 근처 대학에서 진행하는 뮤지컬 수업을 함께 신청해서 다니게 한 적도 있었는데,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으라고 알려 주었더니, 아이 둘은 대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고 다니기도 했다.
아이 둘이 와서 먹는 걸 보고선 식당 직원분들이 간식을 챙겨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함께 성장해 가고, 혼자라면 어려웠을 수 있을 새로운 것들에 도전했다.
둘째들도 초등학생이 되었다. 둘째들 역시 돌봄 교실에서 함께 지내고, 또 집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많은 만큼 찐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혜주네는 5학년에 올라가던 겨울방학 때, 코로나가 막 터졌던 그 시기에, 학군지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멀어졌다.
아이들은 너무 아쉬워했지만, 나 역시 너무 아쉬웠지만 혜주네 가족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리는 멀어지긴 했지만, 우리는 종종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과 함께 만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혜주엄마가 내가 일하는 곳 바로 근처로 발령을 받아 우리는 여전히 간간히 만나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다.
가장 힘들었을 수 있던 그 시기에 혜주네를 만난 건 커다란 행운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아이들끼리 지금은 연락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 더 자라서 서로 자매처럼 지내던 그때를 웃으며 추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