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육아동지
내가 남편과 한 집에 살았던 때는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며 남편의 관사에서 살았던 1년,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던 6개월.
17년의 결혼 생활 중 1년 6개월이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떨어져 지낸다.
둘째를 낳기 위해 친정과 시댁이 있는 광주로 내려갔다.
원래 계획은 친정집에 6개월 정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나와 첫째, 그리고 둘째까지 셋이 친정집에 들어가 있으니, 첫째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친정엄마도 3년 전만큼 젊지 않았고, 나 또한 셋씩이나 얹혀 지내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그래서 한 달 된 둘째와 만 세 살의 첫째를 데리고 남편이 있는 인천 관사로 들어갔다.
마침 서울집도 전세만기가 한참 남았지만, 주인이 들어오겠다며 이사비를 지원해 준다고 하기에 덥석 이사를 감행했다.
우리가 살았던 남편의 관사는 대단지 아파트의 가장 작은 평형이었고, 한 동 전체가 해양 경찰 관사였다.
남편이 함정근무할 때 함께 근무했던 선배가 살고 있었다.
그 선배의 부인은 나와 동갑이었고, 첫째 은솔이보다 한 살 어린 호은이라는 딸이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던 호은엄마는 은솔이를 자신이 근무하는 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녔다.
덕분에 나는 이제 한달 된 둘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수고 없이 집에서 바로 아이를 등원시킬 수 있었다.
해경남편들의 근무는 교대근무였기에 집에 오는 날이 불규칙했다.
낯선 인천이란 곳에서 인천토박이인 호은엄마는 나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나 혼자 애 둘을 케어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걸 알고, 종종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역시 어린이집 선생님답게 놀아주는 게 달랐다. 나도 제법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뭐 하고 있어? 오늘 ooo에 있는 키즈카페 같이 갈래?"
"오늘 남편 근무지? 애들 공연 보여줄까?"
"놀이터 가자."
"대공원 갈까?"
"우리 친정집 텃밭에 고구마 밭이 있는데, 애들 고구마 캐기 체험시켜 주자."
늘 먼저 나에게 다가와주었고, 잘 모르는 인천의 백화점, 문화센터, 인천대공원 등의 갈만한 곳에 데려가 주었다. 나는 그렇게 호은 엄마 덕분에 낯선 도시에서 바깥세상과 소통하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유산의 아픔을 겪은 호은 엄마는 자신의 상처를 내게 털어놓았다. 내게 많은 것을 내어준 호은엄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호은 엄마가 조금이라도 힘든 마음을 내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호은엄마가 어디에도 꺼내놓지 못한 힘든 상황에 공감하며, 진심으로 위로했다. 그래서였는지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우리는 정말 많이 친해졌다.
남편의 부재를 채워주었던 호은맘.
1년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한 육아동지였다.
만 3세의 첫째, 돌도 안된 둘째를 데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인천으로 가야 할 때는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든든한 육아동지를 만나고 나의 1년은 지나고 보니 더없이 행복했던 나날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의 복직 시기가 다가와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너무나 큰 아쉬움이었지만, 나는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고, 남편의 월급만으로 아이 둘을 키워낼 자신도 없었다.
인생은 어쩌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서울에서는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호은맘과의 인연이 내게는 또 다른 좋은 인연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