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회식에 따라가는 아이
엄마와 직장인 사이
둘째가 태어나기 전 첫째를 키울 때는 주변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도 그때는 경찰학교에 있다가 함정으로 발령받아 집에 오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무슨 일이 있을 때면, 2주에 한번 올 때도 있었다.
어린 집에 맡기고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주말에는 동네 산책을 하고, 키즈카페도 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냈다.
문제는 회식이 있는 날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저녁회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필참도 아니다. 그러니 정말 필요한 회식이 아니면 참석하지 않는다. 내 저녁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약 10~15년 전은 그렇지 않았다.
회식은 무조건 참석이다. 다른 약속이 있다면 그 약속은 취소되어야 한다.
1차 후에 2차도 필참이다. 술도 마셔야 한다. 술도 따라줘야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었다. 애엄마라고 예외는 없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그래서 회식에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다행히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같은 팀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나이가 비슷하고, 맞벌이였을 뿐 나처럼 주말부부는 아니었다.)
같이 아이를 데리고 회식에 참석한 날들도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어울리기도 했고, 엄마 옆에서 엄마가 주는 밥을 먹고, 한편에 누워 졸리면 잠을 자기도 했다.
부부가 매일 저녁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었던 다른 동료들보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참석하는 날이 확연히 많았다. 그래도 순한 아이는 잘 있어주었고, 귀여운 목소리로 인사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재롱도 피우며.
그렇게 엄마 회사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아이를 데리고 회식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 시작한 것은 둘째까지 데리고 참석했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경험 때문이었다.
처 전체 회식이었다. 회식 참석 인원이 30명 가까이 되는 큰 회식이었고, 다행히 회식장소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남편이 없는 날이었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회식 참석을 감행했다.
어느 누구도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기에, 못 가겠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둘을 데리고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첫째가 5살, 둘째 2살 때다.
가장자리 테이블 끝에 아이 둘을 데리고 자리를 잡았다. 애 둘을 챙기다 보니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부장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순간 둘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얼굴이 벌게진다. 이건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잽싸게 아이를 안고, 화장실 쪽으로 갔다.
힘겹게 기저귀를 갈고 돌아왔다. 첫째 밥도 챙겨주고 이제 나 좀 먹어볼까 하던 찰나 둘째의 표정이 또 일그러진다.
구수한 향내도 난다. 들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는 다시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이제 더 이상 여분의 기저귀도 없다.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고, 바로 집 앞이라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나 보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지만..
안 그래도 시끄럽고 어수선한 회식자리에 애 둘을 데리고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급격히 현타가 왔다.
도저히 더 있을 수 없어서 아니 더 있어선 안 되겠기에 먼저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첫째는 엄마가 동생 챙기느라 뒷전이 되어 낯선 어른들 틈에 있어야 했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 후로 나는 아이들을 회식자리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 남편의 휴무날이면 참석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회식이라도 가지 않았다.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한 손에 기저귀 가방을 한 손에 첫째의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가다 올려다본 하늘에 달이 동그랗게 떠 있었다. 그 달을 보며 맹세했다.
어떤 순간에도 너희들을 가장 우선시할 거라고..
그리고 첫째와 노래를 부르며 집까지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