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노트 Dec 12. 2024

아이가 둘이 되면 네 배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돌려받는 사랑의 크기는 무한대

둘째는 나와 체질이 달라서였는지, 둘째 임신한 동안 입덧을 정말 심하게 했다. 52kg였던 체중이 45kg까지 줄어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 병원에서도 수액링거를 맞는 것을 제외하곤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링거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그래도 먹어보라기에 그저 계속 먹고 토하기를 반복할 뿐.....

아주 심했던 시기를 지나 조금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출산일까지 답답하고 울렁이는 느낌은 지속되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구토를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엄마의 입덧을 자주 보던 첫째 아이는 구토에 대한 트라우마로 누가 조금이라도 토할 것 같은 증상을 보이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나는 임신에 대한 트라우마로 셋째를 진심으로 원하던 남편(역마살남자)을 증오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임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출산 전에 엄마와 등산을 감행할 정도였다. 마의 소리 없는 외침을 눈치챈 걸까, 둘째는 내가 바라던 대로 예정일보다 열흘 일찍 세상으로 나와주었다.


엄마젖도 분유병도 잘 먹던 첫째와는 달리 오직 모유만을 고집하는 둘째 덕분에, 나와 둘째는 한 몸처럼 늘 붙어있어야만 했다. 낯가림도 없이 아무에게나 잘 안기던 순한 첫째와 달리 둘째는 낯가림마저 있어서 어딜 가나 엄마 껌딱지였다.

100일 지나 밤잠을 푹 자주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밤에도 여러 번 깨서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새벽 서너 시에 깨서 울어재끼던 둘째는 이 패턴을 세돌이 넘고 네 돌이 다 돼서야 멈추었던 것 같다.

작게 태어났지만, 몸놀림은 어찌나 빠른지.

백일이 지나고 얼마 안되어 뒤집기를 했고 넉 달만에 배밀이를 시작해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딘가로 사라져 있었다.

당연히 앉는 것도, 잡고 일어서기도 빨랐고, 만 10개월도 안돼서 두 발로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자기보다 한참 더 큰 아이도 기어 다니는데, 그 옆에서 걷고 있으니, 사람들은 작은 아이가 걷는 것을 보며 무척 신기해했지만, 나는 그 아이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둘째에 비하면 크고, 의젓한 첫째 역시 어린아이. 엄마가 해줘야 할 것도 많고, 챙겨줘야 할 것도 많은 어린 아기였다.

역마살 남자는 일주일에 2,3일 정도 우리와 함께 있었고, 배를 타고 있거나, 파출소에 있었다.

나 혼자 아이 둘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동시에 엄마를 찾을 때가 많았다. 둘째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을 때, 첫째가 응가를 했다고 닦아달라고 부르고 있었고, 첫째 밥을 차려주고 같이 먹을라치면, 둘째가 배고프다며 울어댔다.

다 조용한 것 같아서 밀린 집안일을 하려고 하면, 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돌아오곤 했다.

내가 뭉치라고 불렀던 둘째는 호기심도 많아서인지, 집안의 물건을 가만 두는 법이 없었다. 내가 빨래를 널어놓은 건조대를 건드려서 무너뜨리고, 먹으라고 준 이유식으로 얼굴에 팩을 하고, 요구르트로 촉감놀이를 하고.. 처음에는 말려보았다. 하지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 그냥 맘껏 하게 내버려 두고 치우는 게 더 나았다. 못하게 하면 어찌나 목놓아 울어재끼는지.... 몸을 뒤로 뻗쳐 울어대는 아이를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집을 포기했다.

내가 치우고 정리하는 속도는 두 아이가 어지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깨끗하게 하려고 치우고 있느라 아이들을 내버려 두면 어디선가 조용히 사고를 치고 있었다. (둘째의 경우 화장실로 기어들어가 슬리퍼를 빨고 있다거나.. 화장지를 풀어헤치고 있고.. 첫째의 경우 조용히 패드를 들고 뭔가를 보고 있었다. ) 

집정리와 집안일은 미루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놀아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던 그 판단이 옳았음을 아이들이 한참이나 자란 뒤 느낄 수 있었다.


막내 작은 아빠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삼촌 어렸을 때, 큰형 집에 가면 너무 깨끗하고, 형수가 맛있는 거 주니까 좋았는데, 너희 언니 태어나고, 너까지 태어나니까 너네 엄마가 집치우기를 포기하시더라."


엄마도 그랬다. 집안일에 별 관심 없던 아빠가 집안일을 도와줬을 리 만무하고, 언니랑 내가 세 살 차이가 나니 딱 나와 같은 상황이다. 지금처럼 가전이 발달되지도 않던 시기에 밥만 먹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아이가 한 명일 때와 둘일 때는 확실히 다르다. 둘째가 첫째에 비해 활동적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둘이라 두 배가 아니라 곱절의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는 것을 매일매일 실감했다.

하지만, 두 아이가 내게 의지하며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곱절의 곱절 그 이상, 무한대로 내게 돌아왔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