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빌라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집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오기 전에 손수 어두운 문짝들을 모두 다 페인트칠을 했다.
그리고이것저것 아이와 함께 쓸 가구도 준비했더랬다.
작은 소품들을 준비했다. 장식품을 놓을 벽선반을 설치하고 싶어서 선반을 주문했다.
설치를 위해 벽을 만져보니 역시.. 정말 단단한 시멘트벽이다. 망치로 못을 때려박을래도 단단함에 튀어나온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드릴이다. 그래서 드릴도 준비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의 첫 드릴질이 시작되었다.
벽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그냥 드릴을 가져다대는 것만으로는 뚫리지 않았다. 힘을 잔뜩 주고 밀어야 조금씩 들어갔다. 드릴의 모터힘이 또 어찌나 좋은지 소음은 물론, 그 떨리는 드릴의 몸체를 제대로 잡고 있지 않으면 내 손에서 튀어올라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만큼 강력했다.
나는 그렇게 총 여섯 개의 구멍을 뚫고 벽선반 세 개를 설치했다. 아이 사진과 결혼사진 액자를 올려놓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이 일이 시작이었다.
집에 거의 없던 역마살 남자가 와서 해주기를 기다리기도 힘들었고, 나처럼 모든 게 처음이었던 역마살 남자 역시 잘하지도 못했다.
또 나와는 다르게 집의 인테리어나 가구배치, 물건의 정리에 도통 관심이 없는 남자였기에 내가 원하는 걸 얘기하면 그걸 왜 하냐는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새 전등 교체도 직접 하고, 커튼도 혼자 달고, 옷장이나 책장 등의 가구를 옮기는 등.. 참으로 여러 가지 힘쓰는 일을 했다.
내가 결혼하기 전 엄마가 내게 한 얘기가 있다.
"너는 결혼하면 벽에 못도 박지 말아라. 공주처럼 살거라."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못을 찾는 사람은 늘 엄마였다. 일과 공부 외에 특별히 다른 일에 관심이 없던 아빠는 집안일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고 대부분의 많은 집안 대소사를 엄마가 맡아하셨다. 전등이 나가도 그 전등을 갈던 사람은 엄마였다. 그때는 그냥 엄마가 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랬던 엄마가 내게 했던 그 말에 엄마의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고엄마와 같지 않기를 바라셨던 그 마음에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