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노트 Nov 27. 2024

너는 벽에 못도 박지 말거라.

나는 드릴을 들고 벽선반을 설치한다.

부모라면 누구라도 좋은 환경에서 아를 키우고 싶을 것이다. 

내 마음도 다.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빌라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집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오기 전에 손수 어두운 문짝들을 모두 다 페인트칠을 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아이와 함께 쓸 가구도 준비했더랬다.

작은 소품들을 준비다. 장식품을 놓을 벽선반을 설치하고 싶어서 선반을 주문했다.

설치를 위해 벽을 만져보니 역시.. 정말 단단한 시멘트벽이다. 망치로 못을 때려 박을래도 단단함에 튀어나온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드릴이다. 그래서 드릴도 준비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의 첫 드릴질이 시작되었다.

벽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그냥 드릴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뚫리지 않았다. 힘을 잔뜩 주고 밀어야 조금씩 들어갔다. 드릴의 모터힘이 또 어찌나 좋은지 소음은 물론, 그 떨리는 드릴의 몸체를 제대로 잡고 있지 않으면 내 손에서 튀어올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만큼 강력했다. 

나는 그렇게 총 여섯 개의 구멍을 뚫고 벽선반 세 개를 설치했다. 아이 사진과 결혼사진 액자를 올려놓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이 일시작이었다.

집에 거의 없던 역마살 남자가 와서 해주기를 기다리기도 힘들었고, 나처럼 모든 게 처음이었던 역마살 남자 역시 잘하지도 못했다.

또 나와는 다르게 집의 인테리어나 가구배치, 물건의 정리에 도통 관심이 없는 남자였기에 내가 원하는 걸 얘기하면 그걸 왜 하냐는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새 전등 교체도 직접 하고, 커튼도 혼자 달고, 옷장이나 책장 등의 가구를 옮기는 등.. 참으로 여러 가지 힘쓰는 일을 했다.



내가 결혼하기 전 엄마가 내게 한 얘기가 있다.


"너는 결혼하면 벽에 못도 박지 말아라. 공주처럼 살거라."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못을 찾는 사람은 늘 엄마였다. 일과 공부 외에 특별히 다른 일에 관심이 없던 아빠는 집안일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고 대부분의 많은 집안 대소사를 엄마가 맡아하셨다. 전등이 나가도 그 전등을 갈던 사람은 엄마였다. 그때는 그냥 엄마가 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랬던 엄마가 내게 했던 그 말에 엄마의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고 엄마와 같지 않기를 바라셨던 그 마음에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엄마의 바람과는 정 반대로 엄마처럼 힘쓰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