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 2편

복제인간이 되고픈 워킹맘

by 이슬노트

<1편 보기>


점심산책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았다.

얼마 전 요청이 들어왔던, 사업별 예산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이다. 완료하기로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개발에 박차를 가해 보기로 한다. 시스템 개발이 딱히 거창한 게 아니다. 데이터를 어떤 형태로 관리할 것인지, 그 데이터를 향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예측하며 테이블 레이아웃을 정의한다. 그리고 사용자가 어떻게 쉽고 빠르게 입력하고, 조회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화면을 만들어간다.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메뉴 중 유사한 것을 골라 카피 앤 페이스트..

개발자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를 꼽으라면 기존 소스에서 필요한 기능을 찾아내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는 능력이라 하겠다. 집중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는 급여시스템이다. 학비보조수당 신청에 관한 문의다. 신청화면이 내가 봐도 복잡하다. 전임자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이걸 다시 뜯어고칠 여유는 없다. 다시 개발하던 화면으로 돌아간다. 기능들을 추가하고, 로컬서버로 테스트하고, 오류를 잡고, 다시 테스트. 계속 반복한다. 퇴근시간까지 몇 차례 시스템 관련 문의가 왔다. 전화가 올 때마다 집중은 흩어지고, 개발진도는 더디 간다.

컴퓨터의 시계가 5시를 향해 간다. 하지만 칼퇴는 어렵다. 눈치를 보다가 5시 10분을 넘고, 5시 20분이 다 되어서야 일어나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이제 집으로 출근할 시간이다.


하원도우미 이모님이 아이들을 하원시켜 내가 오기 전까지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작년까지는 학교부설 어린이집에 다니던 첫째를 내가 하원했다. 원생이 많지 않았던 어린이집이라 퇴근해 가면 아이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이 하나 둘 엄마 손을 잡고 사라져 가던 모습을 보며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 그냥 집 근처의 유치원으로 옮겨줄걸. 자주 기관을 옮긴 아이에게 새롭게 적응하는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은 게 이유였는데, 지나고 보니 엄마를 외롭게 기다리던 그 시간이 큰 스트레스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퇴근하고 들어오는 나를 그 누구보다 반기는 아이들을 보면 없던 에너지도 생기는 것만 같다.

이모님 퇴근 전에 얼른 저녁 준비를 한다. 같은 단지에 사시는 이모님이 가끔 반찬을 해주시기도 하지만, 얼마 안 되는 돈을 드리며 식사준비까지 부탁드리기엔 염치가 없다.

이모님이 퇴근하시고 나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엄마업무 시작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특별히 가리는 음식 없이 엄마가 주는 대로 잘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TV를 보거나 각자 논다. 너무 오랜 시간 방치되게 하지 않으려다 보니 마음이 바쁘다. 세제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주말에 꼭 사야 한다. 식기세척기를 너무나 사고 싶지만 좁은 주방에 놓을 곳이 없으니 더 넓은 집으로의 다음 이사를 기약한다.

"내 거야! 만지지 마."

"으앙!"

아이들 소리가 들려온다. 고무장갑을 벗고 아이들에게로 간다. 언니 장난감을 동생이 만져서 언니가 화가 났다. 아직 언니 거, 내 거 구분이 어려운 동생은 그저 울음으로 언니한테 얘기할 수밖에 없다.

"이건 언니 거니까, 은빈이는 다른 거 가지고 놀까? 이건 어때?"

"동생이 언니 거라는 걸 잘 몰랐나 봐. 동생이 만지는 게 싫으면 다른 데에 둬보자."

싸우는 아이들을 중재하다 보면, 두 아이의 마음을 다 읽어주고, 둘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끔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설거지는 애들 재우고 마무리하기로 한다.


애들과 씨름하다 보니 어느덧 씻을 시간이다.

따로따로 씻겨보니 시간도 더 걸리고 한 명 씻기는 동안 다른 아이가 방치되니, 나까지 우리 셋은 함께 씻는다. 욕조에 두 아이를 넣고, 나는 밖에서 샤워기로 물을 뿌려주니 아이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 둘이서 물장난을 치며 깔깔깔 웃는다.

샤워캡을 쓴 둘째는 해바라기가 됐다. 첫째는 이제 샤워캡을 쓰지 않아도 눈을 꼭 감고 거품이 얼굴에 닿아도 울지 않는다. 아이들 샴푸도 바닥을 보인다. 이것도 사야겠구나. 샤워타월을 입히고 나와 얼른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바디로션을 아이들 몸에 발라준다. 오돌토돌하게 올라온 것이 아토피인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소아과에 가봐야 하는 건지 고민된다.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한 우리 집엔 침대가 없다. 이불을 깔고 잠자리를 만들면 아이들은 책을 한 권씩 들고 온다. 아이들은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달라고 한다. 가끔은 그게 힘들어 미안하지만 대충 읽어주기도 한다.


베이비위스퍼 책에 들어 있던 자장가 CD를 틀어준다.

첫째 아이 아기 때부터 틀어주던 자장가라 두 아이 모두 이 CD를 틀어주면 금세 잠이 든다.

"우리 아기들 잘 자.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아이들은 재잘재잘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든다.

쌔근쌔근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만화에 나오는 복제인간처럼

내 몸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

돈 버는 일만 하는 나.

집안 살림만 하는 나.

아이들만 키우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