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본 리딩
한 주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렇게 시간이 가버린다면, 어느 날 정신차리고 보면 나는 어느 새 백발 할머니가 되어있을 것만 같다.
그래도 어쩐지 이 정신없음과 바쁨이 나쁘지만은 않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나를 위한 시간은 하루 중 몇분이 고작이었는데, 이제는 나를 덜 찾는 아이들 덕분에 이전에 비해 꽤나 많은 시간(?)을 나에게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를 배우며 조금씩 성장하고 성취해가는 나를 보고 사춘기의 두 아이들은 "갓생사는 엄마" 라고 한다.
단톡방에 올라온 대본을 출력해 스태플러로 꼼꼼이 엮어 책으로 만들어 갔다.
한 주만에 만난 시민배우님들.
여전히 어색함이 존재하지만 나와 같은 공동관심사로 만난 사람들이라 그런지 더욱 반갑다.
몸 푸는 시간에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얼굴 스트레칭(?)을 했다.
얼굴을 최대한 오므렸다가 최대한 벌리고..반복. 다들 못난이 얼굴이 되어버렸지만 사뭇 진지하다. 짝을 지어 서로 마주보고 얼굴스트레칭을 했다. 어째 다들 이러고 있는 것이 못난이 선발대회에 나온거 마냥 1등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랄까...그냥 그런 생각이 들자, 풋 웃음이 나와버렸다.
"너무 웃기죠?"
상대의 질문에 미안함과 쑥스러움이 밀려들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대라 생각하고 연습실을 걷는다.
내 걸음이 자연스러운지 느껴본다.
무대에서 긴장하면 스텝이 꼬이기도 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연출될 수도 있어서 걷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지금 무대를 걷는다 생각하고 다른 배우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도록 긴장도 늦추지 않는다.
구석에 놓여있던 책상과 의자를 가져와 둥글게 배치를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본격적인 리딩에 앞서 셰익스피어와 햄릿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은 10편의 비극,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이렇게 총 37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36편, 38편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뛰어난 언어 구사 능력과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희곡가가 되었다. 1601년에 쓰여진 햄릿이 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공연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셰익스피어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더 궁금해졌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햄릿"은 선왕의 복수를 갚으려는 햄릿왕자의 고뇌와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삶과 죽음, 정의과 불의, 실체와 허구, 이성과 격정의 문제를 둘러싼 햄릿의 갈등을 통해 우리 모두가 겪을 법한 보편적 경험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공연하게 될 햄릿은 원작에서 각색된 다른 버전의 햄릿이다.
16명의 배역을 위해, 주요 배역 이외에 극중 극의 배역의 역할이 좀 커졌고, 남자배우님보다 여자배우의 숫자가 많아서 레어티즈와 오필리어의 아버지였던 폴로니어스가 어머니로 바뀌었다.
먼저 전체가 한 대사씩 돌아가며 읽었다. 편안하게 읽어달라고 해서 다들 편히 읽었는데, 그래도 읽다보니 감정이 들어가는 분들도 있고, 또 이미 완성된 듯한 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읽는 중간 중간 김신기 선생님께서 간간히 코멘트도 해주셨다.
두번째는 배역 캐스팅을 위해 남자는 햄릿과 왕 대사를, 여자는 오필리어, 왕비, 폴로니어스 대사를 읽어보았다. 저마다 목소리가 다 다르고, 성량도 모두 다르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확 달라지는 것이 어떤 사람이 어떤 배역을 맡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나는 왕비 대사를 읽어보았는데, 별다른 코멘트를 해주시지 않아 약간은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9월의 남은 2주동안 배역을 위한 리딩을 진행하면서 배역이 정해질 것 같다. 두근두근....
수업이 끝난 후 지난 주에 약속한 회식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세분과 결석자 없이 16명 전체가 함께 세종문화회관 근처 전집으로 향했다.
숫자가 많은 만큼 시끌벅적. 막걸리와 음료, 전을 먹으며 연극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또 사는 얘기도 하며 좀 더 가까워졌다. 여러 해 서울시민연극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신 김신기 선생님은 배우는 늘 이별을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작품을 하는 중에는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으로 지내다가 작품이 끝나면 바로 이별이라고 했다. 새로운 작품의 또 다른 배우, 연출진들과의 관계를 위해 이전 관계를 다 끌고 갈 수는 없다고. 맞는 얘기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시작이 있으니.
12월 14일까지 함께 할 서울시민연극 17기 시민배우님과 선생님들. 가족처럼 지내며 멋진 극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