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리딩
내 마음과는 다르게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간다.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는 너무나 그 시간들이 길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츰 나이를 먹어가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게 다른 이에게 없는 하루라는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연습실에 들어가자 간식이 준비되어 있다. 감사하기도 하여라. 참여자의 대다수가 20~40대의 직장인이라 퇴근하고 바로 오는 경우가 많아 식사를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는 다행히 퇴근시간도 5시로 빠른 편에, 직주근접이라 집에 가도 5시 반. 애들과 저녁을 먹고도 충분히 여유가 있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이번에는 바닥에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을 가졌다. 고요한 음악을 들으며, 온몸을 이완하면서 내 몸에 집중해 본다. 나를 찾겠다고 보내온 시간 속에서 가장 많이 한 것 중 하나가 내 몸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주름이 깊어진 얼굴에 마사지도 하고.. 곱슬곱슬 내 머리칼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기도 하고(탈매직 결심!!).. 가만히 누워 내 몸을 생각하다 보니 이리도 건강해서 너무나 감사하다.
빙둘러싼 책상을 놓고 앉아 대본을 읽는다.
이번에는 한 명씩 읽다가 역할을 맡아 주고받는 대사도 해 보았다. 폴로니우스, 레어티즈, 오필리어가 함께 하는 장면에 레어티즈가 노래를 부른다. 레어티즈를 해보겠다고 손을 든 시민배우분은 성우다. 그래서인지 목소리도 너무 좋고, 연기도 수준급이다.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노래를 악보를 보고 부르는 수준 높은 실. 력. 자.
다행이다. 우리 공연을 빛내 줄 이미 완성된 연기자가 있어서.
나는 왕비역에 또 도전해 봤다. 독백 부분이었는데, 너무 어렵다. 햄릿의 엄마인 거트루드는 남편이 죽고 남편의 동생과 결혼하는 인물인데,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자신과 햄릿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미 시동생과 눈이 맞아 함께 일을 도모했다면 천벌을 받을 인물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거트루드는 피해자 쪽에 가까운 가녀린 캐릭터다.
"배역은 언제 정해지나요?"
"아! 이번 주 토요일까지 원하는 배역 오디션 영상을 찍어 개인톡으로 보내주세요. 원하는 배역 한두 역할 골라서 올려주세요."
에??
오디션 영상이라고 라?
대본리딩을 몇 번 해보며 자연스레 배역이 결정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떤 역할에 도전하고 어떻게 촬영을 할 것인가. 언제 연습을 해야 할까..
다들 혼란스러워했다.
목, 금 1박 2일 출장이 있고, 토요일에는 사진수업 출사가 있는 날이다. 언제 영상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는데, 금요일 출장 일정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집에 일찍 왔다.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을 피해 얼른 연습을 했다. 사실 여러 번 읽어봐도 어떤 게 좋은지 잘 모르겠다. 둘째가 하교해서 집에 왔고, 어쩐지 부끄러워진 나는 베란다 한쪽 끝에 자리를 잡고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담당선생님께 영상을 보내버렸다.
이제 모든 건 하늘에 달렸다.
나는 이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배정받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