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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Dec 26. 2022

나의 삶 되찾기「내 아이가 미워질 때」- 2편

엄마도 사람이다.

###2022년이 가기 전에 서랍 속글 정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사진출처:채원

 



『아이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66p 조앤 페들러)     


아이들을 이해하고 원만한 관계를 갖고 싶어서 부모교육 도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모교육 도서를 읽으면서 저의 내면 아이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에서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를 왜 낳았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본 적이 없다면 지금이 적기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72p 조앤 페들러)     


사실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그 모습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자식을 낳아 잘 살지도 못하고 헤어지지도 못하면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자식은 무슨 죄냐?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을 만났고 결혼을 했습니다. 빠르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기에 아이는 바로 가져야지 생각은 했지만, 결혼하고 한 달 만에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그냥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는 건 하나의 관례(?)처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토록 아이를 갖고 싶어 했던 이유 중에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이였을 때 부족함을 느낀 사랑과 관심을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원 없이 주고 싶어서였다. 한마디로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아이들을 낳았다.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75p 조앤 페들러)     



로맨스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저도 주인공 부부들처럼 그렇게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육아는 현실이었고, 나는 정말 준비되지 않은 부모였습니다.


보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나도 나의 부모님과 별반 다르지 않게 아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저는 아직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연습하고 또 연습해요. 서툴고 못나고 어리석습니다. 나는 그런 엄마입니다. 그래도 이런 나도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의도치 않게 자녀를 얻었든 계획 해든,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79p 조앤 페들러)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말투와 행동을 잘 살펴보면 아이를 내 소유물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이렇게 나의 무의식 속에 박혀 있는 사상들과 싸우며 아이의 삶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역사에 기록된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80p 조앤 페들러)     


내 삶 속에 기록된 부모님을 떠올려 봅니다. 지독히 아프기도 하고 애달프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역사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록될까요? 




『나는 내 가치관을 통제할 수 있고, 10대인 내 아들딸이 성장하고 있는 바로 이 집의 가정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85p 조앤 페들러)     


아이들과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나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듯 한 경험을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유지하려면 나를 좀 더 사랑하고 이해하며 수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자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삶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생각과 신념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내 생각과 신념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강요할 수 없지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우리 부모들을 역으로 자세히 관찰한다. 우리의 결점을 발견할 때까지 집요하게 관찰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87p 조앤 페들러)     


내가 아이들과 삶을 분리하면서 온전히 나를 발견하고 찾아가듯이 아이들도 나에게 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부모의 가치와 신념과 맞서며 자신만의 길을 찾을 것입니다.


또한 나를 통해 바라보던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면서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내가 이런 가치들을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내가 가치관대로 사는 길뿐이다. 우리가 말한 대로 행할 때 우리의 말은 비로소 마무리되며 아이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90p 조앤 페들러)     


‘엄마가 그쪽 길로 가봤는데 별로였어’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쩔 때는 그 유혹에 못 이겨 줄줄이 말을 풀어냅니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어리석은 아가다야’하고 머리를 콩콩 박습니다.


말만 하고 나도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말만 앞세우는 엄마가 되어버렸습니다. 언행 불일치 말고 언행일치하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애들에게 이를 드러냄으로써 애들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23p 조앤 페들러)     


‘너 알아서 해’라고 말하면 뭘 어떻게 알아서 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여기까지 이렇게 해줘’라고 말하면 머리에서 아이디어가 팍팍 떠오릅니다.



저는 아이들 선물을 준비할 때 항상 물어봅니다. 둘째 테레사는 항상 명확하게 자신을 받을 선물을 고릅니다. 하지만 아네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고르지 못해요. 엄마가 알아서 주라고 말합니다. 대략 난감입니다.


아이들에게도 부모와의 관계에서 부모의 경계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면 좀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네스, 테레사
엄마는 너희가 건강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언제나 양심에 따라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부모들은 너무 쉽게 아이들의 영역을 침범한다. 애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모든 힘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역으로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복수의 시간이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93p 조앤 페들러)     


아이들 마음을 돌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한다면, 지금은 부모인 내가 힘이 더 세지만, 나중에 나는 늙고 아이들은 힘이 세지면 그때가 아마 복수의 시간이지 않을까요?




『아들이 나를 증오하는 건 아들의 권리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94p 조앤 페들러)     


아이들이 미운 행동을 하면 아이들이 미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아이들도 엄마가 미울 때가 있겠지요? 참 저는 착각 속에 사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언제나 나를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사춘기가 되면 기존의 뇌 구조가 버려지고 뇌가 새롭게 연결되면서 뇌 기능이 보다 더 특수화되고 정교해진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99p 조앤 페들러)     


둘째 테레사는 기분이 상하거나, 혼나더라도 금방 ‘헤헤’하면 웃습니다. 어쩔 때는 나는 아직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데 웃는 테레사를 보면 속이 터질 때도 있습니다.


아네스도 어릴 때 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분이 안 좋거나 화가 나면 문을 닫고 들어가고 그 감정이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다른 어떤 시기보다 감정적 기복이 강하고 불안정한 정서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또한 아동기의 정서 표현은 직접적이고 일시적인 반면 사춘기 아이들은 외부로 표현하기보다는 숨으로 숨기거나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이 쉽게 그 기분을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이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급격한 발달과 전두엽의 가지치기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담당하는 뇌는 발달하는데 이를 조절하는 전두엽은 구조조정 중에 있으니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제 뜻대로 조절되지 않아 스스로도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합니다.


‘아직 저분(?)들은 사람이 아니다.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또는 아유.. 저분들도 크느라 참 애쓴다.’     





『만약 10대 아이들이 얼마나 ‘지루한지’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해 대고 당신이 그 소리에 돌아버릴 지경이라면, 아이들이 아니라 도파민을 탓해야 한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101p 조앤 페들러)     


둘째 테레사는 아직 사춘기도 아닐 텐데, 왜 자꾸 심심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지루한 아이들은 자극적인 게임, 자극적인 미디어 등 자극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습니다. 그래서 쉽게 ‘중독’에 노출되기도 하나 봅니다.


우리 아네스는 웹툰을 너무 좋아합니다. 문제는 저도 웹툰을 너무 좋아해서 같이 본다는 것입니다. 하하




『10대는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멜라토닌을 분비한다. 따라서 10대 아이들의 뇌는 생물학적으로 더 늦게 잠이 들도록 만들어져 있다.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23p 조앤 페들러)     


정말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제발 늦잠도 자자고 했습니다. 초저녁에 잠이 들든 늦게 잠을 자던 6시도 안 돼서 일어나는 아이들에게 정말 ‘학’을 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점점 기상시간이 늦어집니다. 물론 저는 깨워주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상시간만큼은 아이들 자율(?)에 맡겨서 인지 본인들 각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요즘 계속 ‘5분만’이 늘어만 가서 걱정이 됩니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책임감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책임감을 조절하는 뇌의 전액 골 피질이 아직 완전하게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103p 조앤 페들러)     


‘엄마, 나 오늘은 진짜 7시부터 공부할 거야.’


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표정으로 비웃어줍니다. 그럼 아네스는 씩씩거리면서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10분만’을 외칩니다.


아네스보다 나이가 많은 자녀를 둔 친구들이 한 번씩 하소연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할 거라고 해놓고 하지를 않는다거나 성적이 안 나온다고 울면서 공부를 안 한다고 말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의 언행불일치는 전두엽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하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알아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런 모습에 본인이 더 실망합니다.


그런데 자책하는 자신에게 누군가 한마디를 하면 더 서러운 법입니다.





『우리는 이런 정보를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 한다. 만약 알게 된다면, 아이들은 스스로의 게으름, 부주의함 그리고 무모함을 정당화하며 자기들의 반쯤 자란 뇌 탓을 하게 될 것이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105p 조앤 페들러)     


오호~ 이건 몰랐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가끔 아네스에게 뇌 발달에 대해 설명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자신의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 우리들만의 비밀로 해요^^




『어린 시절을 떠나보내는 과정이 아이의 영혼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116p 조앤 페들러)


가끔 품 안에 폭 안기지 않게 커버린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벌써 이리고 컸구나. 크느라 애썼다’ 싶은 마음 반, 좀 더 아이로 있다가 험난한 세상에 늦게 늦게 나갔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마음 반'입니다.


가끔 다 큰 녀석(아네스)이 애기 목소리를 내며 어리광을 부릴 때면 징그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생이 엄마에게 폭 안겨 애교를 떠는 모습을 보며 질투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여름 방학 때 아이들 어릴 적 동영상을 보며 ‘정말 귀엽다’하며 많이 웃었습니다. 그때 아네스가 두 돌 때쯤 되었을 때 춤추고 노래하는 동영상이 있었습니다. 아네스는 본인 동영상을 보면서 ‘엄마. 너무 귀엽지?’ 하며 그 영상을 보고 또 보고 한참을 보았습니다. 





『심리학자는 수잔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너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아요. 이해할 필요가 없어요. 사춘기 시기의 그런 광적인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둔하게 대처하면서, 상황을 잘 알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내 아이가 미워질 때 129p 조앤 페들러)     


그래요. 우리 너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아요. 내가 사랑을 덜 줘서, 내가 아이를 아프게 해서, 나 때문에 아이가 지금 저런 광적인 행동을 하는 것 아닐까? 자책하지도 말아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도 부모도 크는 중인가 봅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요.


‘우리 아이들은 지금 호모 에렉투스(곧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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