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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Jan 22. 2023

당근에서 찾은 큰 깨달음.

우리는 한참 웃었다.(2023.1.22. 일)




이제는 우리가 명절음식을 준비해요.

큰어머니가 아프시고, 큰 집에서 제사를 안 지낸 지 몇 년이 되었어요. 이제 우리는 명절마다 우리 식구만 모여 소박(?)하게 음식을 해서 먹습니다. 그전에도 뭐 큰 집에서 하는 명절음식과 별개로 우리가 먹을 음식을 따로 하긴 했지요.


대부분 어머님이 음식을 주로 준비하시고 형님과 저는 거드는 수준이었습니다. 3-4년 전부터인가? 어머님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시고 형님과 제가 주체적으로 명절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게 참 그래요. 몇 가지 하지 않아도 음식 하는 사람은 장을 보고 하루 종일 서서 바쁘게 음식을 합니다. 하지만 먹는 사람은 그 찰나의 순간에 ‘짜네, 싱겁네’ 품평 을 하지요. 저 입 구녕을 그냥... 하하하 여하튼,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란 거죠.


어머니, 우리도 이제 머리가 컸다고요.

‘항상 고생한다. 힘들게 음식 많이 하지 말고 조금만 해라.’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부터인가 ‘이건 이렇게 해야지’, ‘여기 후추 안 뿌렸지?’, ‘이 숙주, 봉지 숙주 아니니? (숙주가) 다 부서졌네’등의 말씀이 늘어났어요. 물론 어제도 몇 말씀하셨죠. 형님과 저는 눈을 마주치며 동공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아니, 어머님은 우리도 이제 머리가 컸는데 우리 스타일이란 게 있잖아? 근데 꼭 본인 방법대로 하시길 원하시나 봐. 한 번씩 저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서운하고 맥이 빠져..’


‘그러게요. 예전엔 안 그러셨는데, 요즘 부쩍 그러시네요’


‘사람마다 자기 방법이 있는 건데.. 나이 드셔서 그런가?’


‘우리도 나중에 나이 들면 그럴까요?’

우리는 지금도 그랬다.

그리고 형님과 저는 남은 음식, 골뱅이 무침을 시작했습니다. 매번 형님이 혼자 골뱅이를 무치셨는데 오늘은 제가 야채를 썰기를 도왔습니다.


‘형님, 그냥 채 썰면 되죠?’
‘응’



얼마 뒤


‘동서, 그게 모야? (당근)채를 왜 그렇게 썰어?’


‘예? 왜요? 이렇게 채 써는 거 아니에요? 형님은 어떻게 써는데요?’


순간 우리는 눈을 마주 치며 ‘빵’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왼쪽:형님방법 / 오른쪽:아가다의 방법

‘형님,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네요. 당근이 아주 큰 깨달음을 주네요.’


저는 술집에 가서 안주로 먹는 골뱅이 무침 이미지가 있어서 ‘한 일자’로 채를 썰었습니다. 하지만 형님은 직사각형으로 납작하게 채를 썰기를 원했던 거예요. 방금 전에 사람마다 자기 방법이 있으니 그걸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하며 우리는 서로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착각했던 거죠.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요’


이렇게 썰면 어떻고 저렇게 썰면 어때요. 아네스 말처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말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사람의 방식을 수용하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것, 우리는 당근 채 썰기에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달라, 안 그래. 안 그럴 거야’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형님과 나는 한참을 웃고 또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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