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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Feb 12. 2023

혼돈과 삶의 의미「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치유, 글쓰기 치유가 바로 이것이다.(2023.2.3. 금)




‘나도 이토록 처절하고 간절한 적이 있었던가?’


작가 룰루 밀러, 자신의 삶을 차지한 혼돈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처절하고도 간절한 몸부림. 그녀는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담았습니다.



『그 일은 내가 일곱 살 때쯤 일어났고, -중략- 이유가 뭔지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54p)


『아버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씩 웃는 얼굴로 내게 돌아서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중략-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54p)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과연 네가 토양 속에서 환기를 시킬 수 있을까? 목재를 갉아먹어 분해의 속도를 높이는 일은? 나는 네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런 면에서 지구에서 넌 개미 한 마리보다 덜 중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55p)


『일곱 살의 내게 그날 폐부에서 회오리 치던 차가운 느낌을 말로 옮길 수 있는 언어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건 뭐 하려 해? 학교엔 왜가? 뭐 하러 종이에 풀로 마카로니를 붙이는 건데?’ 어쨌든 유년기 동안 나는 그 답을 알아내기 위해 조용히 아버지의 행동을 관찰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54p)


7살. 7살에 '나는 지구에서 개미보다 의미 없는 존재'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들었을 때, 룰루 밀러의 삶에 혼돈이 찾아옵니다. ‘넌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라고 룰루 밀러에게 말하는 아버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알 수 없는 룰루 밀러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삶의 바라봅니다.


몰아치는 혼돈을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사춘기 때,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대학입학 후 곱슬머리 남자를 만나고 드디어 자신의 삶에 안식처를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한순간 실수(?)로 그 안식처 같은 남자가 떠나버리죠.


룰루 밀러는 믿음을 놓지 않아요. 그 남자. 곱슬머리 남자는 떠났지만 3년 동안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죠. 자신이 그 자리에 있으면 언제가 떠났던 곱슬머리 남자. 안식처 같던 그 남자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습니다.



『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5p)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을,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7p)

     

『그래서였다.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20p)


안식처가 사라진 뒤 다시 자신의 삶을 집어삼킨 혼돈을 잠재우고 나의 사랑. 믿음. 노력을 계속해서 밀고 나가도 되는 것인가? 내 믿음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절박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스탠퍼드 대학 초대학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 자서전 2권입니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삶에 찾아온 혼돈을 이겨내고 자신이 믿는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정당성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 이유를 알면 자신의 신념에서도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의 자서전을 읽고 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의 삶을 파헤칩니다. 누군가 자신의 삶에 절박함이 찾아왔을 때 책을 읽는다면 말해주고 싶어요. 이 작가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으라고요. 


저의 삶에 혼돈이 찾아왔을 때, 구명줄처럼 책을 잡았습니다. 살려고 책을 읽었어요. 책을 읽지 않으면 나를 사랑하지 못하던 예전에 나로 돌아가려고 해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나를 찾아가고 글을 쓰며 나에게 나를 다시 새깁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읽으면서 나도 이토록 처절했었던가 생각해 봅니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수천 명의 아우성도 무시해 버린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p)


데이비드는 스탠퍼드 대학 총장직에서 해임되듯(?)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다 이탈리아에 있는 아오스타라는 마을을 다녀오고 이렇게 말합니다.


‘갑상선이 혹이 생긴 천치 같은 피조물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침을 흘리고, 구걸하고, 꼴사나운 행동을 하는 곳’


그는 빈곤, 타락 같은 것들이 유전될 수 있다고 주장하죠. 그리고 미국사회에서는 부적합자들에 대한 불임화 수술이 자행됩니다. 데이비드는 인간을 부적합자와 우등인간으로 나누고 죽는 날까지 우생학자로 남았습니다.


그녀의 삶에 혼돈을 잠재우고 질서를 부여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자는 <악당>이었습니다. 이대로 모든 희망을 놓아야 하는 건가? 좌절한 그녀는 부적합자들이 수용되었던 수용소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수용되었던 ‘애나’와 ‘메리’를 만나죠.



『나는 애나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이기적인, 응석받이 질문이었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23p)


『그때 메리가 불쑥 말했다. ‘나 때문이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24p)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 깨달음.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26p)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약초) 한 것일 수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26p)


어린 나이에 부적합자 수용시설에서 만나 할머니가 될 때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삶의 의미가 되어 의지하며 살아온 애나와 매리. 그녀들의 삶을 바라보며 룰루 밀러는 민들레 법칙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구가 인간을 볼 때는 개미보다 못한 존재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 그 쓸모가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물망처럼 연결된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거죠. 그녀는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던 아버지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34p)


끝까지 우생학자로 남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던 데이비드, 그는 물고기 분류학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물고기가 있고 그가 발견한 물고기들은 어마어마하죠. 하지만 그녀가 분류에서 그는 <악당>입니다. 우생학자였던 그로 인해 애나와 메리는 평생 고통받았습니다. 아니 그가 발견한 어류만큼이나 더 많이 사람들이 고통받았습니다. 그런 자가 어류학자로서 업적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것을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죠.


어떻게 해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있을까? 드디어 데이비드가 스스로 죄의 대가를 받을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생겨났어요.


‘물고기(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기학자들은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을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을 상기시킨다. 한순간이라도 비늘이라는 외피에 시선을 다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더 많은 걸 밝혀주는 다른 유사점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거라고. 예를 들어 폐어와 소는 둘 다 호흡을 하게 해주는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지만 연어에게는 없다. 폐어와 소는 둘 다 후두개가 있다. 연어는? 유감스럽게도 후두개가 없다. 그리고 폐어의 심장은 연어의 심장보다는 소의 심장과 구조가 더 비슷하다. 이런 설명들이 계속 이어지며, 마침내 폐어는 연어보다는 소와 더 가깝다는 결론으로 학생들을 이끌어간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39p)


제가 이해하기로는 외피로 보는 물고기는 비늘, 지느러미 등을 따졌을 때는 ‘어류’라는 언어 아래에서 분류되지만 외피를 가르고 들어가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물고기는 더 이상 어류가 아니다. 뭐 이런 내용 같아요.


작가가 찾고자 하였던 것이 혼란의 질서예요. 그건 이 작가의 성정체성과 관련된 내용이라 책의 뒷부분을 읽기에 불편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래서 저도 작가가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결론을 내렸고, 어류라는 단어를 포기하는 것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하는 것은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50p)


자신의 혼돈을 치유하기 위해 그녀가 어떻게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어떤 문장을 발췌하였으며, 발췌한 문장에서 어떤 사유의 글이 탄생하였는지, 그리고 그녀가 책을 통해 알아차린 것을 어떤 식으로 정의를 내리는지 초점을 두며 이 책을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작가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자신의 삶에 정답을 찾지 못했지만 삶이라는 혼돈의 중심에서 계속 살아갑니다.


삶은 혼돈의 연속이죠. 분명 행복한 기억이 더 많을 텐데 어찌 혼돈의 기억이 더 많이 뇌에 저장될까요? 룰루 밀러는 민들레의 법칙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중요하고 쓸모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지만 저는 작가가 드디어 자신의 혼돈에서 의미를 찾은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자신의 성찰하고 성찰한 자신을 글로 새기는 방법이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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