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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pr 26. 2023

놓치는 순간에서

즐길 줄 아는(2023.4.26. 화)




오늘은

아녜스가 졸업사진을 촬영하는 날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더니 심각한 얼굴로 침대에 걸쳐 앉았다. <무슨 일이지.><왜 그래 아녜스?> 요셉의 질문에 <아니야. 오늘 뭘 입을지 고민하는 중이야.> 에라잇. 싶지만 얼마나 심각할까. 평생 가는 추억이 담기는 사진일 텐데. 단체사진 콘셉트에 맞춰 산 주름치마를 입기엔 오늘 날씨가 너무 매섭다. 감기로 한참 고생 중이기에 챙겨 입은 저 치마가 엄마마음에는 영 마땅치 않다.


문득

아녜스반 학부모 단톡방에서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립글로스는 무광으로 챙겨주세요> 나 너무 신경 안 쓰는 엄마인가. 헤어드라이를 잡아들고 아녜스를 앉혔다. 서툰 손길로 머리카락을 몇 번의 손질해서 단정한 모습으로 학교에 보냈다.


놓쳤다.

졸업사진은 찍어봤지만 엄마는 처음이라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몰랐다. 여러 번 찍는 졸업사진 중에 오늘이 첫 촬영이니. 다음 촬영날에는 오늘보다 더 챙기겠지.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책을 읽어도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내 마음에 다 담아내고 싶다. 내 브런치스토리에 찾아오는 이웃작가님들 글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고. 내 하루 계획에서 무엇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고.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공부를 하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무엇인가 새로이 준비할 때도. 불안하다. <놓치는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하는 마음에.




엄마 오늘 밥은 왠지 맛있을 것 같아.


그래.

놓치고 사는 것이 삶이다. 놓치는 순간 속에서 맛있는 순간을 맛보는 것.


놓치는 순간에서 비우고

놓치는 순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채우고
놓치는 순간에서 숨을 쉬고

놓치는 순간에서 배우고

놓치는 순간에서 삶이 의미를 발견하고


놓치고

놓치는 순간이 하루가 되고 하루와 하루가 엮여 맛있는 삶이 되나 보다. 나는 오늘도 가방을 들쳐 매고 도서관을 찾았다. 무엇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있는 순간을 맛보기 위해.


도서관에

들어설 때면 설렌다. 수많은 자리 중 어느 좌석이 오늘 나만의 공간이 될까. 오늘은 화창하다. 비 온 뒤 하늘은 어느 때보다 화창하다. 놓치는 순간 뒤에 오는 또 다른 순간도 이와 같기로.


놓치는

순간에서 삶을 맛보고 놓치지 않은 순간에서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하루보다 놓치지 않은 순간을 즐길 줄 아는 그런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데일리 필로소피 134p>

하루하루 배워나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기대이하 일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위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하루가 허무하게 느껴질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 중에서 아무거나 찾아내는 능력놓치지 않기를. 아무거나 한 나를 으쓱으쓱해주는 능력 또한 놓치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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