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가다의 작은섬 Jun 29. 2024

인생학교_저기요. 말을 해요.

배움 일기(2024.06.29. 토)




학교폭력예방교육 첫 활동을 하는 날이다.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무감각에 가까울 정도로 덤덤하다. 덤덤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기도를 했다. ‘아이들에게 초점을 두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연결되고 사랑이 넘치는 활동이 되게 해 주세요’   

  

혹시나 활동할 때 필요할까 싶어 노트북도 챙기고, 활동 중간중간 아이들에게 줄 간식과 활동지도 챙기다 보니 가방이 무겁다. 아이들과 활동할 때 체력소모가 많을 텐데 무거운 가방 때문에 수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방전될 같아 걱정이다. 체력을 비축할 필요도 있지만, 난 갔던 길도 잃어버리는 길치라 초행길에 버스를 타기엔 위험부담이 크다. 콜택시를 불렀다. 콜택시 호출을 3번째 하고 있다. 어머나 세상에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괜스레 조급해진다. 안 되겠다. 일단 버스를 타로 나가야겠다. 다행히 정문을 나서기 전 ‘00 콜택시 배차’ 알림 문자가 왔다. 크읍! Jesus, thank you very much


학교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정차한 택시기사분이 위로 쭉 걸어가면 학교라고 말해줬다. 올망졸망 귀여운 아이들이 학교 정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거겠지? 살며시 그 아이들을 따라 걸었더니 학교 정문이 보였다. 늦지 않게 학년 연구실에 도착했다. 연구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던 남자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조금 있으니 HP멘토단 담당선생님과 오늘 활동을 함께하는 선생님들이 오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9시 정각 교실로 향했다. 보조 선생님과 함께 학교폭력예방교육 현수막을 칠판에 붙이고 PPT를 화면에 띄웠다.      


‘끝났다’     


첫 활동 소감? 그런 것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멍하다. 요즘 내가 자주 느끼는 감각이다. 무감각할 정도로 멍한 감각이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읽고 난 뒤 생겨난 무상무념. 이러다가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 아냐? 멍한 감각이 예전처럼 번아웃을 불러오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 감각이 언제까지 내게 머물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가만히 내버려 두고 지켜볼 요량이다.


학년 연구실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함께 보조활동을 해주신 선생님이 내가 준비한 활동 중 하나에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무상무념,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선생님은 그 활동이 불편하셨군요. 그러셨구나’라고 답했다. 그런데 옆에서 그 말을 듣던 000 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얼굴을 하며 ‘그럼 안된다’고 말했다. 멍하고 무감각한 상태에서도 알차게 내가 그 활동을 준비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들이 직접 활동을 해보고 내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았으면 해서 준비한 활동이에요’ (활동 내용은 밝히지 못함. 제가 소심해서요. 또 평가받을 까봐요. ㅎㅎ)

   

'선생님의 의도는 알겠지만, 학교에서 학교폭력예방교육을 하는 선생님이 이런 활동을 허용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이 활동을 준비한 이유는 메아리 되어 울릴 뿐이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저기요. 저 이제 첫 활동이거든요. 앉자마자.. 숨 좀 돌리고 말해요. 우리 이런 말을 주고받을 정도의 관계인가요? 그럼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은데요? 대안이 있습니까? 억압이 최선인가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많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더불어 선생님은 메인자료가 청소년 문화의 집 얼굴인데 주 활동을 하시는 선생님들이 메인 자료를 수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내셨다. (뭐라는 거니?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지금 내 PPT 자료가 문제 있다고 말하는 거야??) 하고 난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도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많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계속되는 지적(?)과 같은 평가에 내 마음도 뭔가 불편한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사람들은 지금 의견을 내는 것뿐인데,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입 밖으로 내면 분위기가 얼어붙고 서로 얼굴을 붉힐 것 같다. 고민 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고르고 고른 말을 했다.

     

‘선생님 내가 준비한 PPT 내용은 모두 우리가 교육받을 때 주신 초안을 기준으로 작성한 거예요. 거기서 나온 학급 목표와 메인 활동을 토대로 준비했는데 어느 부분에서 메인자료와 많이 차이가 난다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니 선생님 자료가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라 이런 의견은 회의 때마다 다룬 이야긴데 회의 때 참석하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다 보니 지금 의견을 말하는 거예요’


나는 또 속으로 말했다. (굳이? 오늘? 그것도 내 활동을 대한 평가를 한고 난 뒤? 연달아서 이 이야기를 해야 함???)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제 활동을 끝나고 말씀하시니 꼭 제 PPT를 두고 하는  같이 느껴집니다’    


한사코 내 PPT를 두고 한 말은 아니라고 말하며 나머지 선생님들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아니라는데 내가 뭐라고 하나 난 그 뒤로 정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사실 몸은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머리와 마음은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준비한 그 활동이 그렇게 문제 있는 활동이었나?

답답하다.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할지 방법을 모르겠다.

이렇게 활동이 끝나면 피드백이 오고 갈 수도 있지. 이런 피드백이 난 아직도 불편하구나.

친분이 있는 선생님이 이런 피드백이 해줬으면 좀 더 받아들이기 쉬웠을까?     


짧은 회의(?)가 끝나고 헤어지기 전 나에게 피드백을 했던 선생님이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선생님 제가 격려를 먼저 했어야 했는데.. 제가 T 라.. 나중에 뒷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나은 것 같아서 바로 말했어요.’


‘아 네.. 괜찮아요. ㅎㅎ...’  


사실 괜찮지 않다. 선생님 피드백이 시기적절하지 않아서 괜찮지 않고, 내 마음 어디가 괜찮지 않은지 몰라서 괜찮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괜찮지 않고, 내가 모르는 내 마음 때문에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더 괜찮지 않다.     


의식이 말한다. 활동 후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야 개선될 것은 개선되고 좀 더 나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지금은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호기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듣고 수용할 건 수용하고 반론을 제기할 건 자유롭게 표현하라고.    

 

무의식이 말한다. 불편하다. 거북하다. 멋쩍다. 속상하다. 힘들다. 당혹스럽다.

     

나는 오늘 첫 활동을 했다. 나 스스로 내 활동을 평가하기도 전에 평가받았다. 내 동의도 없이. 나에게 먼저 오늘 활동에 대한 의견을 먼저 묻고 난 뒤 내 첫 활동에 대한 순차적인 피드백 했으면 좋았겠다. 그보다는 격려를 먼저 하고 난 뒤 수정보완해야 되는 부분을 먼저 말해줬으면 더 좋았겠지. 첫 활동을 한 사람인, 나를 좀 배려하고 존중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격려, 배려, 존중을 원했구나.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모든 지식은 누구나 시간을 투자하면 가질 수 있지만 나의 마음만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_괴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머릿속 지식은 점점 늘어나지만, 내 마음은 아직 모르겠다. 마음이 내 것이 맞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것 같지가 않을 때가 더 많다. 마음과 내가 연결되었다면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선생님 저 오늘 첫 활동하고 나서 아직 내가 진행한 활동이 어땠는지 스스로 평가하지도 못할 만큼 멍해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좋은 말씀 해주고 싶은 마음을 잘 알겠는데 아직 제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했어요. 그리고 첫 활동인 만큼 격려를 먼저 해주시면 제가 남은 활동도 용기 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탁드릴게요. 피드백은 남은 활동 마무리 후 제가 부탁했을 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비난보다는 격려가 아름답다.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격려가 더 많은 일을 한다. 잘못한 것을 바로잡은 후 들려주는 따스한 격려는 샤워 후에 비치는 햇살과도 같다._괴테    

 

내가 오늘 여기 무슨 활동을 하려고 왔는지 그 목표를 계속 상기했고,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고, 아이들 마음에 질문을 던져주고 싶었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내 마음에 사랑을 키워주는지 느끼게 하고 싶었다’ 2시간에 아이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 아이들 마음에 씨앗을 심어주는 것. 학교폭력은 예방해야 하고 모두가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와 의견을 주고받을 땐, 상대방 말에 귀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내 마음의 소리도 잘 들어야 상호 연결된 대화가 가능하다. 일방적으로 듣는 평가가 불편한 것보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을 때 더 답답하고 앙금이 오래 남는 법이다. 결국 난 표현하지 못한 내 마음이 갈길을 잃어버려서 울적했구나.  

   

인생학교_배움 일시 : 2024.06.27. 목 10시 30분

인생학교_배움 내용

- 격려를 먼저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늦지 않다.

- 평가보다는 의견을, 의견을 낼 때는 대안도 함께 이야기하자.

- 상대방 의견에 호기심을 갖자

- 인생학교_내 탓, 남 탓보다는 배우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