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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2시간전

경험을 소비하게 만든다

문장 나눔(2024.07.23. 화)


오늘 새벽에 읽은 책 속에서 찾은 '나만의 로고스 한 문장'을 나눕니다.


마흔에 가까워지면 발산해 버릴 수 없는 경험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다행히도 그들은 자식을 만들었고, 자식들로 하여금 당장에 그 경험을 소비하게 한다. 그들의 과거는 없어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추억은 응결되어 오롯하게 '예지'로 변하고 있다고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한다. 편리한 과거이기도 하다! 호주머니의 과거, 아름다운 격언으로 가득 찬 조그마한 황금색 책이다.

'나를 믿으시오, 나는 경험에 입각해서 얘기합니다. 나의 지식은 모두 생활에서 얻은 것이요.'

'생활'이 그들을 대신해 생각을 해준단 말인가?_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는 정말 '구토'나게 안 읽히는 책입니다. 책의 서반부는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취지로 이런 책을 썼나 싶을 정도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서 더 지루했습니다. '하루 딱 10page만 읽자'하고 결심하면서 읽어 내려가고 있는데 이제 좀 이해가 되면서 흥미롭네요.


어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녜스가 과학 수행평가를 봤는데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점수가 나오지 않아 속상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래 속상할 수 있지. 근데 아녜스 공부는 엉덩이 힘이야. 지능(또는 다른 이유)에 특별하게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주야장천 앉아서 공부하면 다 된다. 네가 정말 잘하고 싶고 알고 싶으면 공부를 해야 하는 거야'


아이들의 감정을 먼저보기보다 논리적 분석을 더 잘하는 엄마는 무심하고 뻔한 한마디를 하면서 신나게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 조용합니다.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아녜스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네요. 


'그냥 속상하다고. 그냥 그렇다고!'


컥! 나는 누구인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초스피드로 손을 씻고 아녜스를 꼭 안아주면서 미안하다고 빠른 '사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 나도 아녜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나의 무슨 경험을 아녜스에게 소비하게 만들고 싶었을까요?'


심리 상담 공부를 하면 내가 몰랐던 사람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쌓이고 모순된 자신을 발견하면서 많은 부분을 알아가게 됩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러한 과정에서 알게 된 지식과 알아차림을 말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합니다. 이제 막 옹알이를 배워 봇물 터지듯 이야기하는 아이들처럼 미친(?)듯이 말합니다. 


제가 알게 된 지식과 알아차림의 경험이 다라는 듯이, '너도 빨리 내가 한 것처럼 이렇게 해봐라. 그럼 네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라고 외치고 싶은 거죠. 삶이 어렵다고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방법을 알려줘도 실행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고 화도 납니다. 경험을 전수하고 그들이 스스로 저만의 방법을 찾아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경험을 소비하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에 일어난 참변입니다.


안 그래도 말에 많은 사람이 더 말이 많아졌습니다. 한때는 이런 내 모습이 걱정되고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금 그 반응(말 많은)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요.ㅎㅎㅎ 말하고 말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험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과 전수의 차이를. 나이 '마흔'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해보니까

나 때는 말이야


이 언어에 공통점은 나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경험의 소비하게 만든다.' 것입니다. 나이 마흔이 되면 산전, 수전, 공수전까지 다 겪고 세상에 모든 경험을 다한 것 같습니다. 발달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릭 홈부르거 에릭슨은 인간의 성격 발달에 있어서 사회적 경험을 강조하며 심리사회적으로 발달단계를 8단계로 나누었습니다. 8단계 중 7단계가 바로 생산성대 자기 침체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나이 '마흔'의 성인 중기로 나 자신에게도 가족 안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삶에서도 '중간'에 위치하며 경험에서도 '중간'에 있죠.


이 시기(중년기)의 중요한 과업은 자식을 낳고, 다음 세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는 것입니다. 전수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경험을 소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 지혜의 전수보다는 소비를 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죠. 


나이 마흔이 되면, 삶의 중간까지 살아오면서 쌓이고 쌓인 많은 지식과 지혜가 포화상태가 됩니다. 포화상태에 있는 지식과 지혜를 어차피 내보낼 수밖에 없다면 좀 더 현명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하루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지금 경험을 소비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무엇을 전수할 것인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전수할 것인가?



감사랑합니다. 글로 상담하는 상담사 아가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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